매거진 하루 한 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

by 휴운



*

'기다림'이라는 단어와 함께 반사적으로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작품들이 있다.


'네가 오후 네시에 온다면, 나는 세 시부터 행복해 질거야.'의 주옥같은 명대사로 기다림의 달뜬 마음을 표현한 어린왕자는 말할 것도 없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봄' '당신' 등으로 비유된 대상들을 기다리는 수많은 문학작품 속의 '기다림'들.


그 중 하나가 바로 황지우 시인의 시 '너를 기다리는 동안'이다. 수능 문학영역에서 절대 빠지지 않는 단골 작품이었지만, 그와 별개로 참 좋아하는 시이기도 했다. 그래서 고등학생 시절에는 종종 친구들에게도 작품의 일부를 빌려 '야아.. 내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그랬잖아~' 하며 장난스레 말하고는 했었다.



그 수많은 기다림의 서사를 품고 있는 작품들 속에서 이 작품이 내 마음에 깊이 남았던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기다리는 대상에 대한 화자의 마음과 태도의 변화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기다림의 대상에 대한 간절함으로 시작하여, 가슴 애리는 기다림의 고통스러운 마음을 지나. 만나기로 한 자리에서 오고 가는 모두 내가 기다리고 있는 누군가처럼 느껴질 정도로 화자의 애타는 마음은 절정에 다다른다.


그리고 그 절정의 순간을 넘어선 화자는 결심하게 된다.

사랑하는 이를 제자리에 가만히 서서 기다리는 소극적인 모습에서 벗어나, 마침내.

사랑하는 이를 부르며 아주 먼 데서 천천히 오고 있을 이를 향해 그도 역시 천천히 걸어가는 것이다.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는 문장을 읽는 순간 오매불망 망부석처럼 그저 기다리기만 하는 화자가 아닌 뚜벅뚜벅 그리운 님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는 화자의 모습이 눈 앞에 그려진다. 왠지 마음이 웅장해진다.

그렇게 뚜벅뚜벅 걷다가, 걷다가 보면 광활한 광장 어딘가의 중간 지점에서 저 멀리 조그맣게 보이기 시작하는 님과 뜨겁게 재회할 것만 같은. 꼭 그렇게 될 것만 같은 마음이 뜨겁게 차오른다.



모든 종류의 '기다림'들 또한 이와 같지 않을까.

사랑하는 님이든, 내가 바라는 무언가가 되었든.

나에게 와주길 간절히 바라는 모든 것들에 대한 기다리는 마음들이.

물론 언제가 나에게 올 것이라면 어떻게든 언젠가는 오게 되겠지만, 나 역시 내가 기다리고 있는 무언가에게 한 걸음씩 내딛어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런다고 해서 더 만남의 시기가 당겨지지 않더라도, 아니 끝끝내 만날 수 없게 되더라도.

마냥 가만히 기다리고만 있지 않았다는 것 만으로도 나에게는 충분한 의미가 있을테니.



(+)


너를 기다리는 동안 - 황지우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첫 문장은 첫 문장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