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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어렸을 때 부터 항상 나의 삶에는 음악이 함께했다. 아기시절에는 부모님께서 거의 하루 종일 틀어두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그 시절의 유행가들.아빠가 사무실에 찾아온 외판원의 영업에 마음이 약해져버리신 탓에 거실 한 쪽에 묵직하게 쌓여있던. 레코드판 위에서 흘러나오던 익숙한 클래식의 선율들. 카세트 테잎과 CD 수집이 취미였던 오빠의 영향으로 나 역시 좋아하는 가수들의 음반들을 차곡히 모아가며 뿌듯해하던 학창시절까지.
좋아하는 음악은 수백번을 반복해서 듣고, 어디엔가 숨어서 알아차려주길 바라는 주옥같은 음악들을 찾아내기 위해 탐음활동을 게을리 하지 않으며 살아왔고 지금도 역시 그렇다.
하지만 이제는 노화의 영향인지 내 머릿속 '음악' 저장 폴더의 용량 부족 때문인지 특정한 순간에 꼭 기억해내어 다시 듣고 싶은 음악들을 떠올리려 하면 한참을 끙끙거려도 떠올리기가 쉽지 않다.
패션에서의 TPO와 비슷한 느낌으로,
'아! 지금 이 시기에는 이 음악을 들어야 딱인데!'
'아, 지금은 이 음악이 쫙 흘러나와야 할 것 같은데.' 와 같이 애틋한 혼잣말을 하게 되는 것이다.
겨울의 찬 공기가 아직 가시지 않았음에도, 마음 급한 봄 햇살에 개나리 꽃봉오리가 노랗게 퐁퐁 얼굴을 내미는 3월의 초입에서는 M-flo 의 Miss you를 들으며 괜히 씩씩하게 걷고 싶어진다. 겨우 내 껴입었던 다운 점퍼 안으로 후끈한 열기가 조금씩 차오르는 것을 느끼면서. 그러다가도 갑작스러운 봄의 환함에 대한 반작용처럼 울적함이 밀려오는 순간에는 푸른새벽의 '보옴이 오면'을 들으며 마음을 차분히 다독여 보다가.
뜨거운 여름의 쨍한 햇살 아래에서는 해변의 파라솔 아래에서 Bee Gees의 How deep is your love를 흥얼거리고 싶은...
생각해보면 나에게 축적된 수많은 TPO Music 리스트의 근원은 그 시간, 그 순간, 그 시절의 내 자신이였다.
나와 모든 면에서 가장 밀접하게 닿아있었던 음악들을 주섬주섬 모아 담으며 쌓여진 것들.
그 시절의 나는 이 음악을 수없이 들었어야 했던 취향을 가졌던 사람. 이 음악을 들어야 그 순간을 견딜 수 있었던 사람. 그 음악의 감성에 꼬옥 맞는 계절과 감성을 살아냈던 사람.
그 시절의 배경음악들을 좇아가다보면, 내 인생의 장면들과 레이어가 눈 앞에서 차곡 차곡 쌓여가는 모습이 펼쳐지는 듯 하다.
오늘 아침 나의 배경음악 역시, 먼 훗날 오늘의 나를 회상하게 될 '그 시절의 배경음악'이 되리라.
언젠가의, 언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