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는 언제나 착해서 좋다니까~”
아침부터 엄마가 웃으며 말했다.
나는 입꼬리를 올렸다. 억지로.
웃는 척을 잘하는 것도 착한 아이의 기술이니까.
“응, 가지볶음 좋아~”
입으로는 그렇게 말했지만, 사실 난 가지를 세상에서 제일 싫어한다.
그 흐물흐물한 식감이랑 쓴맛이 입 안에 퍼질 때마다 속으로 소리친다.
‘진짜는… 싫은데.’
“오늘도 열심히, 웃으며 다녀오겠습니다!”
스스로한테 하는 다짐 같기도 했다.
수업 시간, 친구들이 발표 순서를 정했다.
또 맨 마지막이 나였다.
“괜찮아. 나 맨 마지막 좋아해.”
내가 그렇게 말하자 친구들은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왜 나한테는 항상 선택권이 없어?’
속으로만 삼킨 말은 목 안쪽에 작게 걸렸다.
점심시간엔 급식으로 또 가지볶음이 나왔다.
나는 수저를 들고 한참을 바라보다가 결국 한 입 삼켰다.
‘이젠 가지 냄새만 맡아도 울 것 같아…’
역할극 수업 시간이었다.
“이번 역할극은 ‘좋은 이웃’이야. 해리는 항상 착하니까 ‘도와주는 이웃’ 해!”
수연이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도 “좋은 생각이네” 하고 웃으셨다.
그 순간, 가슴 안쪽이 ‘퍽’ 하고 부딪혔다.
왜 맨날 착한 역할만 해? 나, 진짜 착한 거 아니야…
나는 입을 다물었지만, 이상하게 눈이 뜨거워졌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외쳤다.
“싫어!”
모두가 나를 봤다.
“왜 맨날 나만 착한 역할이야? 나… 가지도 싫고! 발표도 싫고! 그냥 다 싫다고!!”
교실이 조용해졌다.
내 얼굴이 화끈거렸다.
입이 덜덜 떨렸다.
그리고… 눈물이 났다.
그때, 민재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나도 가끔은… 다 싫은 날 있어.”
그 말에 나는 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 울음은 서럽기보다… 시원했다.
꼭 오랫동안 참았던 문이 드디어 열린 것처럼.
선생님이 다가와 무릎을 꿇고 말씀하셨다.
“해리야, 싫은 걸 말할 수 있는 건 용기야. 네가 참 대단해.”
선생님의 눈빛은 진심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눈물을 닦았다.
그날 저녁, 엄마가 물었다.
“오늘은 가지볶음 먹을래?”
나는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아니, 오늘은 그냥 계란말이 먹고 싶어요.”
엄마는 놀란 눈으로 나를 보다 웃었다.
“그래,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엄마의 말에 나는 조용히 웃었다.
이번엔 진짜 웃음이었다.
그날 밤, 나는 일기장에 이렇게 썼다.
《오늘은 진짜 싫은 날이었다.
근데, 싫다고 말할 수 있어서…
오늘은 진짜 좋은 날이었다.》
창밖에 걸린 달님이
내 미소를 따라 조용히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