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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편하게 하세요'
언제부터인가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 또는 친구 그리고 가족 외의 사람에게 말을 놓는 경우가 거의 없다. 아니 아예 없다고 해도 무방한 것 같다. 보통 사회생활에서 혹은 인간관계에서 가장 실수하기 쉽고, 후회의 영역이 넓은 것이 '말' 아니던가. 오죽하면 '침묵은 금이다'라는 속담까지 생겨났을까.
그래서 실수와 후회의 마지노선을 딱 정해주고 갈등과 후회의 완충작용을 해 주는 강력한 도구가 상대에 대한 '존대'라는 생각을 했다. 일단 존댓말을 쓰는 순간 서로에게 마냥 편하지만은 않은 관계로 분류가 된다. 상대가 어렵고 불편한 대상이라기 보다는, 말과 행동에 조금 더 신중을 기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그러다보니 나보다 연배가 많은 분들에게는 물론이거니와, 동연배나 나이가 어린 사람들에게도 존대를 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실은 어떤면에서는 존대를 하는 것이 더 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상대와 나 사이 적당한 거리를 두는 합법적 장치처럼 여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도 당신을 이만큼 조심스럽게 대할테니, 당신도 나를 조심스럽게 대해주길 바라요. 이런 암묵적인 의사표현이었을지도.
그래서 방어할 틈도 없이 상대에게서 '반말 기습'을 받게되면 적잖이 당황하게 될 때도 있다.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의 표현인지, 나에 대한 일방적인 친밀감의 강요인지 혼란에 빠지게 된다. 실은 모두가 나와 같은 마음은 아니라는 건 알고 있다. 무엇이든 조심스럽고, 또 마음의 예열이 딱히 필요하지 않은 그런 사람들도 있다는 걸.
하지만 여전히 나는 반말이 조금 어렵다. 상대가 내민 철벽 제거의 패를, 덥썩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 쥐는 일이.
편하지 않은 마음으로, 편한 척 이야기를 나누며 경계를 허문듯이 보이는 일이, 아무래도 쉬워지지가 않는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런 나라도 내가 먼저 무장해제를 하게 되는 사람들이 있다.
애쓰지 않아도 내 마음, 너무 꽁꽁 싸매지 않아도 가만히 다가와 편안히 내 마음의 문을 조심스레 두드려주는 사람들. 흔치 않기에, 더 귀하고 고맙고 다정한 이들.
그 사람들을 만나게 될 때면, 용기내어 내가 먼저 말해보리라. '우리 말 편하게 할까요?'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