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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절이라는 단어가 품은 감정은 '불편함'이다. 어쩔 수 없다. 일단 거절한다는 행위는 상대방이 원하는 바를 내가 행해줄 수 없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설사 불가피한 이유가 있다 하더라도 일단은 상대의 기대를 거스르는 일이니까.
하지만 당장의 불편함을 이기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상대의 부탁을 수락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여러가지 측면에서 그렇다. 일단 현실적으로 그 제안이나 부탁이 무리한 것이라면 모두를 불행하게 하는 일이다. 상대를 제대로 충족시켜 줄 수도 없을 뿐더러 내 자신 또한 내내 불편하고 불행할테니까.
그리고 현실적으로 불가한 것은 아니나, 내가 원하지 않는 제안이나 부탁이라면. 내 마음이 내키지 않는 종류의 것이라도 마찬가지이다. 어떻게는 마음은 완전히 숨겨지지 않는 것이니까. 아마 내가 아카데미 주연상급의 명연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거나 마음을 숨기는데 일인자가 아닌 이상 상대에게도 그 아우라가 전해지지 않을까.
그래서 곰곰 생각해보면 '잘 거절하는 일'이 참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무조건 '아니요, 싫어요'를 뱉어내는 그런 것이 아니라 주어진 상황을 현명하게 잘 판단하여 누구도 감정이 상하지 않도록 거절할 수 있는 능력. 누군가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끙끙대며 무수한 밤들을 눈물로 지샜던 내가 인생의 현 시점에서 깨닫게 된 것이기도 하다.
내가 거절을 한다고 해서 세상이 무너지는 것도 아니고, 나의 인간관계가 파탄이 나는 것도 아니며 거절 한 번에 내가 천하의 냉철하고 이기적인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님을 이제 좀 깨닫게 되었달까.
현명한 거절은 어설픈 수락보다 더 나은 판단이 될 수도 있고, 나의 주관을 뚜렷하게 전달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는 것. 나의 거절 한 번에 토라지고 실망하는 인간 관계는 실은 그 정도 깊이의 관계였을지도 모른다는 것.
잘 거절하는 것이, 삶의 해상도를 더 높여주는 기술이 될 지도 모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