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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랜 기간동안 바다 건너 여행을 떠나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어김없이 떠오르는 음식이 있다. 떠오르는 것과 동시에 조금 간절해진다고도 볼 수 있겠다. 특정 음식이 마구 먹고 싶어진다거나 간절히 먹고 싶어지는 경우가 드문 나에게는 꽤 흔치 않는 순간이다. 그것은 바로 엄마표 김치찌개. 특별한 재료가 들어간다거나 (솔직히) 엄청나게 맛있는 것은 아닌데 현관문을 열자마자 코 끝으로 침투해오는 엄마표 찌개의 얼큰한 냄새, 오랫동안 푹 끓여 뿌옇토록 붉은 색깔, 뭉근하게 숟가락으로도 갈라지는 김치와 입 안 가득 채워지는 그 뜨끈한 온도가 절실해진다.
가끔 식탁에 앉아 엄마가 찌개를 끓이시는 것을 본 적은 꽤 많다. 하지만 요리에 큰 취미도 열정도 없으나 가족을 위한 생계형 요리를 추구하시는 편이라 그 과정 또한 유별나지 않다. 요리계의 미니멀리스트이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주 재료들을 숭덩숭덩 냄비에 넣고 오래오래 펄펄 끓이다가 적당히 간을 맞추면 끝이 난다.
나 역시 엄마의 딸 답게 요리를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크게 하고 싶은 의욕이 있거나, 흥미가 있지는 않아서 엄마가 해주시는 요리들의 레시피라는 것을 단 한번도 궁금해 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부모님과 함께 생활하는 과년한 딸의 특권 아닌 특권이라 해야하나. 결혼을 하여 내 가정을 꾸렸다면 엄마와 마찬가지로 누군가를 위한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레시피'라는 것에 불가피하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엄마의 레시피라는 것은 나에게 특정한 요리법이라기 보다는 엄마의 요리, 그 자체인 것 같다. 하늘 아래 김치찌개라는 카테고리 아래 무한한 레시피와 맛들이 존재하겠지만 내가 인생에서 맛 본 것들 중에서는 거의 유일한 것. 아마도 여러개의 같은 메뉴의 요리들을 앞에 펼쳐두고서 블라인드 테스트로 엄마의 요리를 맞추어 보라고 해도 그리 어렵지 않게 단번에 찾아낼 수 있는 그런 것. 입 안에 한 입 넣는 순간 요리의 맛과 함께 그 맛과 관련된 온갖 알고리즘들이 머릿속에 펼쳐지는 그런 요리. 세상에 태어나 먹은 첫 음식부터 시작하여, 지금껏 먹어 온 요리 중에 가장 많은 것들을 만들어 준 사람. 내 인생의 셰프 엄마의 레시피를, 더 오래오래 선명하게 기억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