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프타임

by 휴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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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의 최애 프로그램 중의 하나는 슈팅스타이다. 은퇴 한 축구 선수들이 팀을 만들어 현역 선수들과 리그전을 치루는 포맷의 프로그램이다. 단장은 박지성선수, 그리고 최용수 감독과 설기현 코치 그 외 팀을 구성하고 있는 선수들도 스포츠의 '스'에도 관심이 없는 나조차 한 번 쯤은 들어본 한 시절을 풍미했던 선수들이다.


축구라는 스포츠에 본디 큰 관심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스포츠를 사랑하는 아빠와, 나이 터울이 있는 오빠를 둔 숙명으로 어쩔 수 없이 함께 앉아 축구 경기를 보아야 했던 어린시절이었다. 그 덕분에 축구의 기본적인 룰들을 알고 있는 정도. 게다가 오빠와 함께 만화책을 빌려 읽다보니 수많은 축구 만화들을 섭렵하여 꽤나 더 세세한 축구의 세계에 심화학습이 된 그정도의 의미였다. 월드컵이나 국가대항 경기가 있을 때나 가끔 경기를 시청하던 나에게 왜 갑자기 본격 스포츠 프로그램인 슈팅스타가 최애 프로그램이 되었을까. 그것은 지식도 기능도 스포츠라는 장르와도 무관한 어떤 것이 나의 마음을 울려서였을 것이다.


부상, 나이, 그 외 각자의 사정으로 평생 해 오던 축구를 그만두고 살아가고 있던 사람들이 다시 모여 한창 절정이었을 때의 마음을 떠올리며 심장이 터질 듯이 필드 위를 달리는 모습. 그 진심과 열정에 나는 매료되었던 것 같다.

거의 아들 뻘에 가까운 현역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거침없이 몸싸움을 하고 공을 필사적으로 지켜내며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내려는 선수들. 하지만 마음을 좇아가지 못하는 체력적인 차이로 인해 어처구니 없이 골을 먹기도 하고, 상대의 우위에 좌절하기도 한다.


하지만 필드 위에서의 필사적인 선수들의 모습들 못지않게 나에게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경기장 밖에서 모두가 모여 서로 대화하는 모습이었다. 전반전이 끝나는 휘슬이 울리고 난 뒤 갖게 되는 하프 타임. 이미 후반전을 뛰기는 커녕 당장 쓰러질 것 처럼 모든 체력이 소진된 선수들은 지난 전반전의 경기를 복기하며 마음을 다잡는다. 전반전의 경기가 상대를 따라잡기 힘들 정도로 격차가 벌어져버린 경기에서도, 비기거나 앞서있는 경기조차도. 전반전에서의 실수를 반성하고 동료를 격려하며 자신의 남은 모든 것을 다 쏟아 부으리라 다짐하면서. 남은 시간들을 후회 없이 채우기 위해 숨을 고르는 모습들. 그 시간의 장면들 속에서 경기장 위를 달리며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내는 모습 못지 않게 성숙하고 단단한 무언가를 느낄 수 있었다.


열정과 패기는 분명 인생의 큰 동력이지만, 늘 화르르 불타오르기만 한다면 곧 소진되어 버리고 말 것이다. 가끔은 축구에서의 하프타임처럼 숨을 고르며 내 인생의 전반전을 한 번 톺아보는 순간이 꼭 필요하다. 지나간 것을 후회하는 것이 아니라, 거름과 교훈삼아 아직 남은 후반전을 더 잘 채워내기 위해서. 스스로를 격려하고 내 주위를 살펴보기도 하면서, 나만의 하프타임을 만들며 살아가리라 다짐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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