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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추구미라는 단어가 어디서나 심심치않게 보이고 들리기 시작했다. 추구미란 '이상적으로 꿈꾸는 미' 쉽게 말해 자신이 꿈꾸는 이상적인 모습의 의미이다. 이제 반해 '도달가능미'라는 단어도 등장했다. 도달가능미는 '현실에서 실제로 도달할 수 있는 모습'을 의미한다. 실은 추구미와 대비되는 현실의 모습과 한계. 추구미와 대조시켜 조금은 자조적이고 풍자적인 의미로 발생한 단어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도달 가능미'를 추구미와 정반대편에 있는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나의 '도달 가능미'를 스스로 진단하고 아는 것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흔히 말하는 자기객관화 같은 것. 내가 어떤 특징을 지닌 사람이고, 현재 어떤 능력치를 지니고 있으며 어떤 개성과 아름다움을 지닌 사람인지를 정확히 알아야 내가 원하는 모습과 방향의 그 곳에 다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자신을 잘 분석하고 진단한 후에야, 내가 추구하는 모습으로 변화할 수 있는 더 구체적인 실천 방안들을 떠올려 볼 수 있을테니까. (너무 T적인 사고라 생각하는가. 하지만 정작 나는 골수 대문자 P라는 것이 함정이다.)
내가 추구하는 아름다움의 이상향이 내가 노력하고 애를 써서 이룩해 놓은, 혹은 이룩할 수 있을 것 같은 도달 가능미와 큰 간극을 지니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영영 일치할 수 없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언가를 꿈꾸고 이상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이 그저 허황된 것만은 아니다. 끊임없이 도달 가능미의 좌표를 조금씩 뻗어가다보면 추구미의 좌표에 가까워지고 있지 않을까.
두 좌표가 포개어지지 않아도 상관 없다. 두 좌표의 머나먼 간극에 좌절하고 자조하는 것보다는, 그래도 조금씩 천천히 도달가능미가 추구미와 포개어질 그 날을 꿈꾸며 뚜벅뚜벅 나아가는 것이, 백 배는 더 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