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 불포화상태

by 휴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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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화상태'

학창시절 과학시간에 한번쯤은 들어본 단어이다. 용매에 용질이 최대한으로 녹아있는 상태. 포화상태를 넘어 용해도를 초과하는 순간, 용매에 녹아있던 용질이 용액의 바닥에 가라앉기 시작한다. 더 이상 용질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책상에 앉아 이 과학적 현상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엉뚱한 생각을 했었다. 포화상태에 다다르기 전까지는 용매에 어떤 용질이 녹아있는지 알아차리기 어렵다. 마치 블라인드 테스트나, 숨바꼭질 하는 기분과 비슷하다. 하지만 포화상태를 넘어서는 순간, 용질은 더 이상 자신의 정체를 숨길 수가 없다. 용해도의 최대치를 넘어선 용질 알갱이들은 마치 열두시가 되면은 문을 닫아버리는 동동동대문을 열어라 게임에서 한 발 늦어버린 것과 같은 비운의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전직 이과생인 나는 문과적 감수성을 듬뿍 버무려 머릿속에 이런 상상을 펼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앙큼한 다짐을 했다. 인생을 자발적 불포화상태로 살아가겠다고.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대체 이 용액에는 어떤 물질이 녹아있는 것인지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누구나 나를 완전히 다 알아차릴 수 없도록 완전히 투명한 사람은 되지 않겠다는 새침한 다짐을 말이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없는 맹물은 아닌, 포화를 직전에 앞둔 불포화 상태와 같은 사람이 되어야지. 보이지 않게 밀도를 채우고 있으면서도 지나치지도 넘치지도 않게. 모든 면에서 말이다.


실은,

그것이 가장 어려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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