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의 기술

by 휴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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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 말할 것 같으면 이게 본업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화해를 중개한다. 말그대로 화해 중개사에 가깝다. 손톱만한 다툼에도 아이들은 쪼르르 달려와 동시다발적으로 상황 설명 및 감정 보고를 한다. 재미있는 건 분명 동시에 두 사람이 겪은 장면인데도, 각자의 서술에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각각 자신의 입장과 시선에서 느낀 것들을 위주로 이야기하다보니 당시의 객관적인 상황을 정확하게 알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겨우겨우 나의 온 집중력을 다해 재구성 한 뒤 추리를 통해 얼추 비슷하게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정말이지 이럴때마다 역시 사람은 각자 보고싶은 대로 듣고 싶은 대로 느끼고 싶은 대로 받아들이고 각색이 가능한 존재이구나, 다시금 깨닫는다.


그렇게 한 명씩 각자 하고 싶은 말을 듣고 있다 보면 상대의 말이 잘못되었다고, 아니라고 사정없이 툭툭 끊어버리고 잘라내는 통에 도저히 이 대화는 언제쯤 끝이 날 수 있을지 알 수가 없다. 서로 얼굴을 마주 보지도 않은 채, 이야기를 들으려는 마음조차 갖지 않고 자신의 억울함을 쏟아내는 메아리만 울려퍼진다.


이럴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딱 한마디. 구구절절 서로 하소연 배틀을 하지 않아도. 서로의 감정이 상한 그 순간 이 딱 한마디면 이렇게 서로의 심박수가 올라가지 않을텐데, 라는 생각을 한다. 바로

'그래 너도 참 기분이 상했겠다.'

일단 아무리 화가 치밀어오르더라도, 상대가 건네는 무조건적인 공감의 한 마디 앞에서는 어쩔 수 없이 멈칫하게 되니까. 그래 너도, 그리고 나도 우리 모두 서로에게 화가 나고 짜증이 나고 속상하지만. 일단 너의 마음이 그랬겠구나, 알아차려 주는 일. 그 공감 한 조각이 일단은 분노를 잠재울 수 있는 킥이 된다.


사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서운하고 화가 나고 속상한 순간들의 거의 대부분은 그렇지 않은가. 내 마음이 이런데. 이렇게 속상한데, 왜 몰라주냐고. 그런 마음이 쌓이고 쌓여가면서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관계의 끝으로 향해가는 것이 아닐까.


화해를 하는 데에는 거창한 기술이 필요치 않다. 사람과 사람 사이 마음을 다독이는 데에 기술이라는 딱딱한 단어는 어울리지도 않는다. 일단 모든 것을 제쳐두고 상대의 마음을 다독여주자. 그 공감의 힘은 생각보다도 더 강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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