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하루 한 글

해빙은, 서서히 -

by 휴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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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이 녹기 위해서는 여러가지가 필요하다.

일단 필요한 것은 얼음. 얼음이 녹기 위해 얼음이 필요하다는 표현이 좀 웃기게 느껴질지 모르겠으나, 사실이지 않은가. 얼음이 있어야 얼음이 녹지.

얼음이 준비 되었다면 이제는 녹아내림. 진짜 해빙을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생각해보면 이제부터는 꽤 많은 변수와 방법들이 존재한다. 뜨거운 열을 사정없이 퍼부을 수 있다. 성격이 엄청나게 급한 사람이라면 아예 끓는 물에 퐁당 넣어버릴 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반면, 가만히 따뜻한 햇살 아래에 놓아두고 느긋하게 기다리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을 사람 사이의 긴장과 갈등에 대입 해 생각 해 보았다.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생기는 갈등, 긴장과 불편함들이 만들어내는 크고 작은 얼음 알갱이들. 때로는 눈송이처럼 보슬보슬한 솜털같은 얼음일 수도, 때로는 아이스 음료 컵 속의 자잘한 각얼음 일 수도. 어쩌면 망치로 두드려도 깨어지지 않는 단단한 얼음 원석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다양한 형태의 얼음들을 없애버리고 싶다고 해서. 이 불편하고 차가운 얼음조각들을 깨부수고 뜨거운 물을 퍼붓는것이 과연 최선일까.

때로는 차가운 냉기가 가슴속을 시리게도 하고, 따끔하게 콕콕 찌르기도 하겠지만 그럴수록 서서히 조금씩의 온기로 녹여내야 한다. 조금씩 얼음이 녹으며 녹은 자리에 고이는 물들이, 오롯이 사라지지 않고 존재할 수 있도록 말이다.

어느새 얼음이 다 녹아 물이 되어버렸을 때,

아 - 그래 우리 사이에 이런 얼음이 있었지.

하지만 이제 이렇게 사르르 녹아버렸는 걸.

잊지마, 이건 우리가 서로 차근히 인내하며 노력한 덕분이라는 걸. 하고 녹아내린 얼음의 흔적을 보며 서로에게 기억될 수 있도록.

해빙은, 그렇게 서서히 이루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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