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하루 한 글

새장을 떠나, 둥지를 틀어

by 휴운


*

사랑한다는 것으로

새의 날개를 꺾어

너의 곁에 두려 하지 말고

다만 네가 머물 수 있는

넉넉한 품을 마련하라.

서정윤, <사랑한다는 것으로>

중학생 때이던가. 처음 이 시를 읽고 얼마나 큰 울림을 받았던지. 물론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휘청이던 감성의 시절이었으니 더 그 울림의 폭이 컸던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당시 내게 이 시는 타인을 향한 '소유하지 않는 사랑'의 경전과도 같았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의 날개를 꺾지 말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수첩 한 귀퉁이에 정성스레 옮겨 적곤 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삶의 무게를 온몸으로 느끼게 된 지금, 시의 행간에서 새로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시인이 말한 그 '새'는 타인이 아니라, 어쩌면 나 자신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살아가며 수많은 '새장'을 만난다. 부모님의 과도한 보호, 사회가 정해놓은 평범한 기준, 혹은 실패가 두려워 스스로를 가둔 안락한 울타리 같은 것들이다. 그 안은 따뜻하고 안전하다. 비바람을 걱정할 필요도 없고, 정해진 시간에 꼬박꼬박 모이가 주어진다. 그러나 그 안락함의 대가는 가혹하다. 날개 근육은 서서히 퇴화하고, 하늘을 우러러보던 눈동자는 창살 너머의 풍경에 만족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사랑한다는 명목으로, 혹은 안전하다는 핑계로 우리는 스스로 자신의 날개를 접어온 것은 아닐까.

어느 날 문득, 창살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너무도 눈부셔 견딜 수 없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때가 바로 새장의 문을 열어야 할 때다. 문을 여는 손길은 떨릴 수밖에 없다. 새장 밖은 거칠고 냉혹하며, 나를 지켜줄 철창도 없다. 하지만 진정한 비상은 그 두려움을 통과할 때 시작된다.

새장을 벗어난다는 것이 곧바로 안락한 정착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제부터는 스스로 나뭇가지를 물어오고, 진흙을 이겨 나만의 '둥지'를 틀어야 한다. 둥지는 새장처럼 매끈하거나 견고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비바람에 흔들리고 때로는 보수해야 하는 수고로움이 뒤따른다. 그러나 둥지는 구속이 아닌 '선택'의 공간이다. 내 발로 나뭇가지를 움켜쥐고, 내 온기로 바닥을 데우는 그곳에서 비로소 나는 나의 주인이 된다.

이제 나는 다시 그 시를 읽는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나 자신의 날개를 꺾어 안락함 곁에 두려 하지 않기로 한다. 대신, 내가 언제든 돌아와 쉴 수 있는 넉넉한 품으로서의 둥지를 스스로 마련하려 한다. 새장을 나선 날갯짓은 고되겠지만, 허공을 가르는 그 서툰 바람 소리야말로 내가 살아있다는 가장 고귀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버리고, 채우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