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하루 한 글

자화상

by 휴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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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첩을 정리하다가 문득 깨닫는다. 나는 생각보다 내 얼굴을 잘 모른다. 남이 찍어준 사진 속의 나는 어색하고, 거울 속의 나는 늘 준비된 표정이다. 그래서 가끔은 묻는다. 저 중에 무엇이 진짜 나일까.


자화상은 얼굴을 그리는 일이 아니라,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드러내는 일에 더 가까운 것 같다. 화가가 자신의 얼굴을 수없이 그렸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궁금해진다. 정말 자기 얼굴이 궁금해서였을까, 아니면 시간이 지나며 달라지는 마음을 붙잡고 싶어서였을까.


나도 가끔 혼자 있는 시간에 나를 들여다본다. 요즘 내가 자주 쓰는 말, 괜히 예민해지는 순간, 이유 없이 기분이 가라앉는 날들. 그런 것들을 하나씩 떠올리다 보면, 얼굴 대신 태도가 보인다. 표정보다는 방향이, 생김새보다는 마음의 결이 드러난다.


어쩌면 자화상은 완성되는 그림이 아닐지도 모른다. 오늘의 나는 어제와 조금 다르고, 내일은 또 달라질 테니까. 그래서 나는 선명하게 그리기보다는, 지워질 수 있는 연필선처럼 나를 남겨두고 싶다. 틀릴 수도 있고, 수정할 수도 있는 상태로.


언젠가 다시 돌아봤을 때, 지금의 내가 조금 낯설더라도 괜찮겠다. 그 낯섦이 내가 살아왔다는 증거일 테니까. 자화상은 결국 잘 그린 얼굴이 아니라, 계속해서 나를 바라보려는 태도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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