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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부터 매사에 조심스러운 아이였다. 급격한 변화에는 반드시 몸도 마음도 모두 탈이 나기 일쑤였다.
새로운 것에 호기심은 생겨도 막상 성큼성큼 다가가 보고, 듣고, 경험하는 일에는 항상 두려움이 앞섰다.
익숙해지고, 익숙해지면 조금씩 마음의 경계를 놓고. 그러면서 좀 더 시야에 들어오는 것들이 또렷해지고 편안함 속에서 조금씩 나의 능력이 발휘될 수 있게 되는 그런 아이.
성인이 되고 사회인이 된 후에도 그 성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변한 것이 있다면 직장인, 사회인으로써 제 구실을 해내기 위해 생겨난 약간의 초능력이 보태어졌을 뿐. 남에게 민폐 끼치는 것, 나로 인해 일의 진행이 더디어 지는 것이 싫어서 억지로 내 안의 모든 엔진을 가동하여 가속 구간을 만들어 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비록 그 찰나의 가속 구간을 지나고 난 후에는 거의 방전의 상태가 되어버리지만 말이다.
릴스, 쇼츠, 유튜브의 십분 남짓의 영상마저도 기본 속도로 보는 것이 답답하게 여겨질 만큼 모든 것이 순식간인 세상이다. 그래서인지 체감상 하루 하루가 쏜살 같다는 진부한 표현조차도 무색하게 느껴진다. 활을 떠나버린 화살이라는 '쏜살같다'의 비유를 더 빠른 무언가로 대체해야 할 것만 같은 나날들.
본성은 0.7배속 쫌 되는 사람인 내가 1.5배속이 디폴트값이 되어버린 세상에서 살아가는 일은 마치 결승점이 보이지 않는 트랙 위를 달리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나에게 맞지 않는 속도로 맞추어진 트레드 밀 위에서 억지로 숨을 헐떡이며 달리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운동 효과는 뛰어날 지 모르겠으나, 분명한 것은 나는 조금도 즐겁고 뿌듯하지 않을 것만 같다. 과감히 트레드 밀의 정지 버튼을 누르고 내려 와 보기로 한다. 열심히 땀을 흘리며 달리는 사람들 속에서 걸어나와 내가 걷고 싶은 나만의 속도로, 내가 좋아하는 공간과 풍경 속에서 타박 타박 걷는 길을 택하기로. 조금 덜 효율적이고 능률적이지 않아도 좋다. 나만의 속도가 어느정도인지를 알고, 그 속도에 맞추어 나의 삶을 살아내는 일. 그것이 어쩌면 내 삶에서의 가장 효율적인 길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