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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였을까. 60초도 채 되지 않는 숏츠를 보면서도 화면 구석의 배속 버튼을 본능적으로 찾게 된 것은.
OTT로 예능을 재생하며 나도 모르게 배속을 1.25로 올린다. 딱히 빡빡한 일정에 쫓기는 것도, 시간 내에 완수해야 할 절박한 과제가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내 삶은 언제나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기 위해 현재를 재촉하고 있었다.
이 습관의 뿌리를 가만히 더듬어본다. 직장에서 쉴 틈 없이 멀티태스킹을 강요받으며, 내 마음속 타임라인은 단 한 번도 단일화된 적이 없었다. 비자발적인 멀티플레이어로 살며 나는 '효율'이라는 신에게 일상을 제물로 바쳐온 셈이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더 많이 일과를 해치워야만 비로소 안도감이 찾아왔다. 대상을 깊게 들여다보는 응시의 기쁨은 사라지고, 내 앞에 놓인 시간을 최대한 빠르게 소거하는 것이 삶의 목적이 되어가고 있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삭제'하고 있었다.
그 부작용일까. 이제는 진득하게 가만히 앉아 있는 것조차 적지 않은 노동이 필요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위'의 순간이 찾아오면 좀이 쑤시고 불안이 엄습한다. 고요를 견디지 못하고 다시 자극의 배속 버튼을 누르는 나를 발견할 때면, 내 마음의 브레이크가 고장 난 것은 아닌지 덜컥 겁이 나기도 한다.
이제 나는 부러 조금씩 느릿해져 보기로 한다. 삶의 모든 장면에 반사적으로 누르던 2배속 버튼 대신, 생소한 '0.5배속'의 기어를 넣어본다. 빠르게 감기 중에는 뭉개져 보이지 않던 길가의 연한 초록과, 타인의 문장 사이에 숨은 숨표들이 비로소 눈에 들어온다.
결국 삶은 얼마나 빨리 끝내느냐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결을 만져보았느냐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0.5배속으로 걷는 이가 2배속으로 달려가는 이보다, 더 짙고 선명한 풍경을 품은 채 더 먼 곳까지 닿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