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 처방전

by 휴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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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은 불청객이라기보다 밀린 고지서에 가깝다.

외면한다고 사라지지 않고, 연체료처럼 마음의 피로만 불어난다. 사람들은 이 기분을 서둘러 수술해서 도려내야 할 혹처럼 취급하지만, 사실 슬픔은 고장 난 내면이 스스로를 고쳐보려고 내보내는 가장 정직한 자구책이다.


무언가를 잃어서 슬픈 게 아니라, 실은 그걸 그만큼 사랑해서 아픈 것이다. 슬픔의 깊이는 내가 쏟았던 다정함의 총량과 정확히 비례한다. 그러니 슬픔이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할 일은 통증의 기원을 가만히 응시하는 일이다. 내가 무엇에 이토록 진심이었는지, 어떤 대목에서 마음이 툭 하고 부러졌는지 말이다.


이 처방전의 첫 번째 복용법은 '전력으로 슬퍼하기'다. 괜찮은 척 지어 보이는 웃음은 마음의 덧을 키울 뿐이다. 슬플 때는 기꺼이 울어야 한다. 눈물은 체내에 고인 감정의 찌꺼기를 씻어내는 가장 값싼 해독제다. 참아낸 눈물은 안으로 고여 마음을 딱딱하게 굳게 만들고, 결국 나를 더 무겁게 한다.


두 번째 복용법은 '고요와 독대하기'다. 소란스러운 위로 속에서 억지로 고개를 끄덕이는 것보다, 혼자 차를 마시며 적막을 씹어 삼키는 시간이 훨씬 더 농밀한 치유를 준다. 그 침묵 속에서만 들리는 낮은 목소리가 있다. 내가 무엇에 취약한 사람인지, 진정으로 무엇을 갈망하며 살았는지 일깨워주는 아주 정직한 고백들이다.


슬픔은 영원히 입주하지 않는다. 마음이라는 공간에 잠시 머물며 비를 뿌리고 지나가는 기상 현상일 뿐이다. 슬픔이라는 처방을 정직하게 받아낸 마음은 이전보다 조금 더 단단하고 유연해진다. 타인의 허기를 읽어내는 다정한 눈도 결국 이 눅눅한 시간을 통과하며 길러진다.


오늘 마음 한구석이 축축하다면, 억지로 말리려 애쓰지 말자. 대신 그 비를 기꺼이 맞으며 마음의 먼지를 씻어내기로 한다. 잘 앓고 난 뒤의 마음은 볕 좋은 날 말린 빨래처럼 다시 보송보송하고 투명하게 빛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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