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제는 다짐하는일

by 휴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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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삭제는 찰나의 망설임을 통과한다. 이 버튼을 누르는 것이 혹 실수는 아닐까. 재차 확답을 요구하는 팝업창처럼, 나 역시 스스로에게 묻는다. 정말 이것을 도려내어도 괜찮겠느냐고.

무언가를 채우고 더하는 일은 대개 무의식의 영역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 겹겹이 쌓이는 먼지처럼, 혹은 거대한 서가에 책 한 권이 슬며시 꽂히는 것처럼 그것들은 조용히 자리를 잡는다. 사람과의 인연이나 추억이 대개 그렇다. 이름 모를 대화방이 늘어나고, 다시는 발신할 일 없을 누군가의 번호가 연락처 목록에 유령처럼 기생하는 일 말이다.

그러나 지워내는 일은 다르다. 거기엔 반드시 서슬 퍼런 판단과 결심이 따른다. 이것을 덜어내고도 나의 일상은 무너지지 않을까. 설령 허전함이 찾아온대도 감내해야만 하는 것일까. 텅 빈 자리에는 무엇을 새로이 심어야 할까.

그리하여 삭제는 끝내 하나의 다짐이 된다. 나는 이제 이것 없이도 오롯이 존재하겠다는, 비워진 공간만큼 더 선명해지겠다는, 기어코 나아가겠다는 서늘하고도 뜨거운 의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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