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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배 Feb 27. 2021

다정한 침묵

인간관계

 아침에 남자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체력이 방전인지라 기운 없는 목소리로 받아 놓곤, 밤새 넷플릭스를 보고 오전 6시에 잠들었다는 남자친구의 말에 “왜 그랬어.”라고 한마디 쏘아붙였다. 주로 피곤하거나 바쁠 때 대화의 방법이 엇나가 버리곤 한다.

 이 기운을 채우고자 조용한 곳에서 맛있는 커피와 케이크 하나 먹어야겠다 싶었다. 집에 들어가는 길에 좋아하는 카페에 들렀다. 당장 해야 할 일정이 취소되어 마침 빈 시간도 생겼고, 누군가 나에게 맹목적으로 좋은 에너지를 줬으면 좋겠는 마음에서였다. 이럴 땐 참 책만한 것이 없다. 나는 e북 대 종이책이라면 무조건 종이책의 편이었는데, 지금 이 순간만큼은 너무나도 독서를 해야만 하는 타이밍이라 급한 대로 전자책 어플을 다운 받았다. 훅 올라오는 독서 욕망이 생겨도 서점에 가지 않아도 된다니 세상이 참 좋아졌다는 걸 실감한다. 게다가 가입 시 첫 달 구독료는 무료였다.

 요즘 책을 읽으며 마음에 박히는 글귀는 대체로 ‘침묵’에 관한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표현하며 살고, 주장하고, 설득한다. 하지만 언어라는 것이 본래 다듬지 않으면 모가 나기 쉽고, 적절하지 않으면 하지 않는 것만 못할 때가 많다.
 최근에 아이들과 이야기하던 중, 친하다고 과격한 표현을 쓰고. 가까우니 솔직하게 상대를 폄하하는 경우 어떻게 응답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당연히 안 될 일이라고 했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다정하게 아름다운 언어를 써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어제 아침에도, 오늘 아침에도 나의 말을 시초로 하여 다툼이 일었다.

 ‘말과 소통’에 방점을 두고 사랑하는 사람을 대해야 하는데. 목적을 상실한 대화, 이를테면 소통은 제외되고. 나의 일방적인 감정 표현이 되는 경우, 긍정의 말이라 하더라도 허공에 날리게 되거나, 부정의 경우 상대를 해치는 말이 되기 쉽다. 아마도 이런 고민 때문에 침묵에 대한 메시지들이 마음에 닿았던 게 아닐까.

 침묵은 바로 앞에 있는 상대의 존재를 인정하고 어루만지는 행위이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듯 여기는 것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를 위로하는 행위이다. 조금 더 성숙해져 침묵으로 상대를 만질 수 있게 되면 좋겠다. 오랜 시간이 걸릴지라도 순간에 함께 존재하고, 서로에게 조금 더 느슨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래는 최근에 내게 와 닿았던 책들의 긍정적 의미의 침묵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나의 모국어는 침묵」 류시화
 훗날에야 나는 그것이 인디언 부족들의 전통인 것을 알았다. 누군가를 만나면 그들은 대화를 시작하기 전에 그렇게 한동안 침묵으로 상대방을 느끼는 것이다. 자기 앞에 있는 존재를 가장 잘 느끼는 방법은 말을 통한 것이 아니라 침묵을 통한 것임을 그들은 깨닫고 있었다.
 그 후 미국에서 돌아와 나는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인디언들 흉내를 내고는 했다. 상대방의 존재를 느낀답시고 입을 다물고 오 분이고 십 분이고 앉아 있었다. 그 결과, 아주 괴팍하고 거만한 사람이라는 평을 듣게 되었다. 침묵은 흉내가 아니라 존재의 평화로움에서 저절로 나오는 것임을 미처 몰랐다.

「말과 마음 사이」 이서원 
 허물없는 공간에서 진심이 담긴 눈빛과 몸짓으로 마음을 살며시 전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이런 방법의 효과를 알게 된 것은 제가 30대 초반에 집단 상담에 참여했을 때입니다. 당시에 저는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말을 하는 활발한 사람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습니다. 진행자였던 할머니 선생님이 그런 저를 며칠 내내 멀리서 응시하고 계셨습니다. 한 번씩 눈빛이 마주치면 지그시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나흘째 되던 날 다시 눈이 마주쳤는데 선생님이 저를 가만히 쳐다보셨습니다. 그 그 눈에 슬픔이 서려 있었습니다. 눈으로 말씀하시는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되는데...’
그 순간 제 마음의 갑옷이 무너졌습니다. 저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르 흘렀습니다.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잊고 계속 울었습니다. 애쓰며 괜찮은 척, 밝은 척, 착한 척해온 저의 서러움이 왈칵 올라왔던 것 같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돼.’ 한마디도 하지 않으셨지만 선생님은 눈빛과 가만히 어깨에 얹어주는 손으로 깊은 이야기를 저에게 했습니다.
 그때 알게 된 것은 큰 말은 우리의 입을 통해서는 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전하려고 하면 이미 작아지고 왜곡되기 때문입니다. 큰 말은 입이 아니라 눈을 통해 전할 수 있습니다. 몸의 미세한 흔들림으로 전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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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침묵은 언어만큼이나 따뜻한 힘을 가진다.

불필요한 감정의 날림은 상처가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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