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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배 Feb 15. 2021

사이클

 작년에는 도통 눈이 오지 않았다. 눈을 기다려도 흐릿한 색상의 때 아닌 비만 추적거릴 뿐이었다. 따뜻해진 겨울 날씨에 우리나라에서 더 이상 겨울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온난화가 심각해져 버린 건지 걱정이 됐었다. 하지만 이런 걱정이 무색하게 올 겨울은 35년 만에 최강 추위라며, 전례 없는 추위에 대한 보도가 매스컴을 요란스럽게 울렸다. 오랜만의 추위가 반갑기도 하고, 때때로 울리는 재난 경보 메시지가 무섭게 느껴지기도 했다.

 일을 마치고, 추위에 옷을 잔뜩 여미고 치과에 가고 있었다. 도보 5분 정도의 거리인데 갑자기 눈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메신저에는 도로에 발 묶인 강남 한복판의 사진과 길에 꼼짝없이 묶여 있다는 지인들의 메시지들이 오가고 있었다. 잠깐 걷는 사이에 까만 옷이 하얗게 스웨터를 입은 것처럼 변했다. 점퍼를 툴툴 털고 들어가 진료를 받았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하늘은 어둠 섞인 누런 회색 빛이었다.

 진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 꽤나 험난했다. 제설 작업을 미처 제대로 대비하지 못한 서울시를 원망하는 신문 기사들이 포털 사이트에 가득했다. 붐비는 퇴근길, 버스 안에서 읽는 원망 섞인 기사들은 과연 정보로서 효용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무쓸모했고, 나의 많지 않은 여가 시간이 버스에서 소모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래, 차라리 내려서 걷자.’ 집까지 지하철 두 정거장이 남았을 때 버스에서 내렸다. 가만히 버스 안에서 다른 사람들의 짜증 어린 표정과 한숨, 그리고 그것이 만드는 공기 속에 잠겨 있자니 힘들었다. 걷기 운동이라도 하면 갑갑한 버스 안에 있는 것보다야 낫겠지 싶었다. 쌓인 눈은 제설이 되지 않아 길에 그득했지만 다행히 눈은 그쳤다. 걸을 만할 것이다.

 버스에서 내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유튜브 채널을 켰다. 마침 ‘눈’을 제목으로 한 새로운 음악 목록이 올라와 있었다. ‘눈’ 하면 떠오르는 음악인 모양이었다. 잔잔한 피아노 곡이 흘러나왔다. 작년 겨울, 독립 영화관에서 보았던 눈 내린 일본 배경의 영화도 생각나고, 좋아하는 작가의 눈을 소재로 한 글도 생각났다.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어느새 해가 어둑하게 져버렸다. 눈 내리는 날이면 길가의 네온사인이 유독 노랗고 동그랗게 빛을 내는 듯하다. 노란 울림들이 길가에 반짝인다. 오랜만에 본, 이제야 반갑게 느껴지는 ‘눈 내린 도시’였다.  

 그렇게 기다리던 눈이 내렸는데, ‘강추위,  내일 출근길 정체 예상, 제설 작업 미비, 누구 탓’ 등의 매스컴의 목소리 그대로 부정적인 기운을 전해 받고는 지난 기다림의 시간을 단 몇 초 만에 소멸시켰다. 정말 바보 같았다. 버스에서 내리고, 신문 기사를 끊어 내고서야 드디어 ‘첫눈이 내리는 날엔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든지, 좋은 음악과 눈은 참 잘 어울린다든지, 도톰한 목도리를 하고 눈 오리를 만드는 귀여운 꼬마들’을 떠올릴 여유가 생겼다.

 눈 오는 날의 불평과 아름다움을 두어 시간 만에 골고루 느낀 하루였다. 세상 어디에나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은 공존하고, 아름다운 것과 아름답지 않은 것이 존재한다. 어찌 보면 세상은 일장일단의 규칙성 안에 존재하는 것 같기도 하다. 눈은 누군가에게는 아름답게 보이고, 또 누군가에는 출근길 정체를 유발하는 골칫덩어리로 보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명암의 사이클’ 안에서 나는 무엇을 선택해 살아갈 것인가? 나는 주저 않고 ‘밝은 것, 예쁜 것, 좋은 것, 낭만적인 것’을 선택할 것이다. 세상이 아름다워야 살 맛도 난다. 나의 이 편향된 취향을 보전하기 위해서는, 나의 수많은 변덕을 유발하는 ‘주변 상황들’을 선택적으로 취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긍정과 부정, 낭만과 덜 낭만, 명과 암의 홍수에서 나는 콘택트도 언택트도 아닌, ‘선택트(선택+contact)’의 삶을 살고 싶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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