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고
홍대입구역 근처의 한 건물로 들어서 지하로 내려가면 꼭 닫힌 문 사이로, 피아노, 바이올린, 반도네온, 베이스가 내는 음악 소리가 묵직하게 세어 나온다. ‘오늘은 누가 왔을까. 지난번 내 춤 신청을 거절한 사람도 있을까. 오늘은 어떤 곡을 가장 즐겁게 추게 될까.’ 계단을 내려올 때부터 블랙홀에 빨려드는 것 같은 느낌과 함께 조심스러운 긴장감을 느끼며 밀롱가로 들어간다. 문 열기 전부터 나는 긴장감과 설렘으로 인해 요동치는 이 마음을 애써 누르고 문을 연다. 밀롱가는 ‘탱고’를 추는 장소이다.
밀롱가에 들어가니 익숙한 얼굴들이 보인다. 자리에 앉은 사람들의 시선이 문쪽으로 쏠리고,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눈인사를 하며, 사람들이 춤추고 있는 플로어의 귀퉁이를 걸어 들어온다. 유독 반가운 얼굴이 보이면 멈춰 서 가벼운 입맞춤 인사인 ‘베쏘’를 나누며 안부를 묻는다. 주인장이 있는 바(bar)에 도착해 출입 등록을 하고, 탈의실로 들어가 드레스업을 한다. 집에서 공들여 화장하고 왔으니 옷과 구두만 바꿔 입으면 된다.
탈의실 문을 여니 새까맣고 풍성한 머리칼을 가진 하얀 피부의 언니가 쨍한 빨간 립스틱을 바르며 인사를 하고, 다른 한 언니는 새로 구입한 듯 보이는 짙은 브라운 컬러의 원피스를 입고 뒷모습을 확인한다. 나는 곧 일상의 옷을 벗어내고, 챙겨간 버건디 색의 탱고 드레스를 입고, 9cm의 힐로 갈아 신는다. 사회적 가면이자 역할을 훌훌 벗어버리고 자유로워지는 순간이다.
평소에는 직업상 학부모를 상대하다 보니, 주로 어두운 색의 긴 바지나 무릎 아래로 내려오는 치마 등 단정한 옷을 입는다. 하지만 지하 1층의 밀롱가에 내려온 다음부터는 가슴골이 깊게 파인 옷이나 몸 선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옷을 얼마든지 마음 내키는 대로 입을 수 있다. 사회적 역할에서 벗어나 순전히 각자의 취향대로 자신을 마음껏 꾸밀 수 있는 시간이다. 이곳은 직업, 학력, 나이 등 사회적 배경과 상관없이 순전히 탱고로 관계를 쌓고, 춤을 추는 곳이다.
나는 밀롱가의 탈의실에서 맡을 수 있는 세월 묵은 큼큼한 냄새와 탈의실 밖에서 들리는 1930년대 황금기의 탱고 음악을 사랑한다. 내가 탱고를 시작하고, 음악을 사랑하게 된 것은 20대 중후반 사회인으로서 세상에 자리 잡기 위해 가장 바빴던 시절, 태국 방콕에서였다. 방콕은 어느날 갑자기 친구에게 받은 현지 채용 공고를 보고 가 2년을 지냈던 곳이다. 본래는 한국어 교원으로 경력을 쌓으러 간 나라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인 대상의 입시 강사 생활을 하게 되어 버린 곳이기도 하다. 현지 물가로 월급을 받다 보니 생활을 유지하기엔 택도 없는 수입이었고, 돈벌이가 되는 일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인들의 교육열이 치열한 만큼 돈벌이가 되었고, 그만큼 정신없이 바빴다.
대뜸 고3 입시생들을 가르치려니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공부해야 할 것도 많았고, 열심히 준비한 만큼 말로 뱉어내야 할 것도 많았다. 주말에는 오전 5시 반에 카페에 도착해 바짝 수업 준비를 하고, 9시부터 수업을 시작해 점심 시간 30분 서브웨이 샌드위치를 먹는 시간을 제외하곤 밤 9시까지 수업을 했다. 국제학교는 한국 학교보다 수업이 일찍 끝나기 때문에 평일에도 학원의 수업 시작 시간이 한국보다 일러서 평일도 주말도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거기에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한국어 과외도 병행했다. 정신 차려 보니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 있었다. 계절 구분 없는 나라에서의 보내버린 1년은 마치 생략된 1년 같았다.
간절히 바랐던 해외 생활인데,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쳐 마른 장작 같아졌다. 목은 항상 헐어 있었고, 잠도 부족했다. 그러던 중 내게 한국어 과외를 받던 1살 언니이자 친구인 파리지앵 폴린이 춤을 배우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녀는 지쳐 있는 내게 댄스 스튜디오 한 곳을 추천해 주었다. “보배, 한국 사람들은 어느 나라에서든 일을 가장 많이 하는 것 같아. 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는 중요해. 너만의 활력이 될 수 있는 걸 찾아봐. 마침 너가 다니는 일터 근처에 괜찮은 댄스 스튜디오가 있어.”
운명 같았다. 폴린의 추천으로 방문하게 된 스튜디오의 리셉션에는 그날따라 동갑내기 탱고 선생님이 자리에 앉아 있었고, 그렇게 나는 내 인생 가장 바쁜 시절, 태국에서 다른 춤이 아닌 탱고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후 동갑내기 탱고 선생님은 나의 단짝이 되어 열혈 탱고 티처이자, 방콕 맛집 메이트가 되어 주었다. 그렇게 남자 파트너 한 명 없는, 성비 최악의 댄스 스튜디오에서 탱고를 배우는 새 친구들과 우정을 쌓았다. 이후부터 나는 30분 만에 서브웨이 샌드위치를 먹고 종일 일하는 날에도 퇴근 후에는 꼭 신발을 챙겨 밀롱가에 갔고, 평일에도 하루는 꼭 시간을 비워 탱고 수업에 가 친구들을 만났다. 묵직한 탱고 음악이 들리는 장소에서 와인을 마시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춤을 추었다.
어느새 2년이 지나 태국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대만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왔다. 태국에서의 생활이 가장 바쁜 줄 알았는데 오산이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에 생활은 더 바빴다. 젊어서 하는 고생은 사서도 한다니 아무래도 내 인생에 한가한 시절은 앞으로도 쭉 없을 것만 같았다. 정신없이 바쁠 때면 나는 더 절실하게 밀롱가를 찾았다. 일주일에 한 번, 밤 9시에서 새벽 1시까지 4시간만큼은 탱고를 위한 시간으로 비워두었다. 태국에서의 친구들은 더이상 없었지만, 밀롱가에 흐르는 탱고 음악은 이전의 기억들을 환기해 주기에 충분했다. 충분히 그리워하고 행복해할 수 있었다.
홍대입구역에 도착해 건물 지하 1층으로 내려갈 때면 나는 내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되어 토끼 굴로 들어가는 것 같다. 계단을 걸어 내려가 ‘외부와 단절된 순수의 공간’으로 들어가는 것 같기도 하고, ‘과거의 추억’이나 ‘새로운 즐거움의 세계’로 가는 것 같기도 하기 때문이다. 직업에서 요구하는 단정한 차림새와 역할에서 벗어나고, 수많은 추억들이 ‘음악’으로 환기되는 공간이다. 악단마다 다른 음악의 분위기와 에너지, 그리고 그것을 표현하는 무작위의 춤 상대. 그리고 상대방 신발 속 미묘한 발가락의 움직임까지. 탱고는 참 섬세하고, 매번 새로운 춤이다.
상대방과 음악에 온전히 몰입해 탱고를 추고 나면 나는 세상의 모든 번잡한 소리로부터 벗어나 숨통 구멍이 생긴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언젠가 몰입과 집중은 인간이 가장 행복함을 느끼는 요소라는 글귀를 읽었던 기억이 난다. 누구에게는 이 ‘순수한 몰입의 세계’가 수채화를 채색하며 보내는 대여섯 시간일 수도 있고, 사랑하는 가족과 바다로 여행을 떠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내게는 이 쓸쓸하고 애절한 탱고 음악 안에서 그날의 감수성을 상대방과 공유하고, 친밀함을 느끼는 ‘탱고를 추는 순간’이다. 유독 마음이 지치고 힘들면 밀롱가에 내려가, 엉킨 마음을 춤으로 풀고, 음악과 상대에게 온전히 집중하며, 생활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시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