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배 Apr 11. 2021

행복의 공식

여행

 네모난 직사각의 창문 밖에는 바다 위 어스름한 불빛이 반짝이는데, 방 안에는 아로마 향이 은은하다. 지난 며칠은 숲 속에서 내내 산책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근처 조용한 카페에 가 커피를 마시면서 ‘빈둥’거렸다. 신혼여행 나흘 째가 되어서야 우리는 바다 근처의 숙소로 옮겼다. 천천히 시간 흐르는 것을 그대로 마주하는 날이 참 오랜만이다.


 바다가 보이는 숙소로 옮긴 첫날, 우리는 아침 일찍 일어나 유칼립투스 오일을 코 끝에 바르고 요가를 했다. 오전 7시 1층 요가실로 내려가면 누구나 요가를 할 수 있다.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고 먼 곳을 응시하며 집중하면, 저 멀리 한라산이 유채꽃을 새싹처럼 품은 모습이 보인다. 눈 뜨자마자 본 연하늘색 바다와 이제 막 뜬 태양. 그리고 코 끝에 맴도는 아로마 향과 요가 덕분에 하루가 벌써 충만해진 기분이다. ‘가벼운 운동’을 마친 뒤 식당에 가서 전복죽을 먹었다. 바다를 보며 먹는 ‘따뜻한 전복죽’은 항상 옳다.


  이튿날 아침, 우리는 ‘비자나무 숲’으로 갔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찌르르르 새소리가 들렸다. 여러 톤의 새소리는 그 높낮이도 모두 제각각이다. 크기도 다양할 새들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사람들의 사그작사그작 흙 밟는 소리가 들리고, 바다를 품은 듯한 웅장한 숲속 바람 소리도 들었다. 정오에 다다를수록 길어지는 나무 그림자를 보는데, 다람쥐처럼 생긴 아기 담비가 고개를 빼꼼 내밀고는 사라졌다. 정돈되지 않아 더욱 커다란 나무 군락의 야생성이 느껴졌다. 숨을 깊게 쉬니 투명한 나무 냄새가 이마 위까지 올라오는 듯하다.


 산책을 마치고, 바다 근처의 횟집에 갔다. 모둠상을 주문했더니, 반찬으로 온갖 해산물을 내어 준다. 방금 잡은 귤빛 멍게가 상에 차려졌고 얼른 한 입 넣었다. 제주의 귤빛 바다를 먹은 것만 같다. 꿈틀대는 산낙지를 소금장에 찍어 먹으니 괜스레 힘이 솟는다. 짭쪼롬한 게장과 꼬돌꼬돌한 전복까지 먹으니 배불러 메인으로 나온 회를 손댈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마지막 나온 매운탕까지 싹싹 남김없이 잘 먹었다. ‘바다가 주는 식재료’를 원산지에서 시차 없이 먹을 수 있다니 참 근사하다.


 시간에 따라 다르게 반짝이는 바다를 관찰하고, 아침 기운을 받으며 가벼운 운동을 한 뒤 따뜻한 밥상을 받기. 산새 소리 가득한 숲에서의 산책, 파도 소리 들으며 먹는 바다 음식들. 이렇게 숲과 바다의 생동함을 취하는 일은 모두 작지만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이다. 문득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엔 작은 공식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게는 그 공식이 ‘시간적 여유+가벼운 운동+바다와 숲으로의 여행+맛있는 음식’이 아닐까 싶다.

 

 인생에 공식이 있고, 각자가 자신의 공식을 안다면, 삶을 조금이나마 덜 피로하다고 느끼며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이를 테면, ‘늦잠+따뜻한 커피+햇살+책’의 조합이라든지, ‘집 앞 카페의 테라스+동네 친구+수다’라든지 말이다. 누구나 자신이 행복해지는 공식을 하나쯤 가지고 있으면 어떨까 생각한다. 각자가 ‘자신의 행복 공식’을 알고, 서로가 행복해질 수 있도록 돕는 고운 세상이 되면 좋겠다. 우리는 충분히 행복할 때, 서로를 해하지 않고, 그제야 서로에게 얼굴에 핀 웃음 물살을 건넬 수 있을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제주 비바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