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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배 Jun 20. 2021

초롱한 눈망울의 어린아이

미얀마 여행

 내 인생 최고의 여행지는 ‘인레 호수’와 ‘바간’이다. 미얀마의 관광 도시이다. 인레 호수에는 수상 가옥이 있고, 커다란 와이너리가 있다. 동네 어귀의 여행사에 가면 자전거를 빌려 준다. 자전거를 타고 한 시간쯤 가다 보면 삐쩍 마른 강아지나 물기 머금은 촉촉한 풀들, 1층짜리 국민학교를 만날 수 있다. 오전 일찍 자전거를 타고 풀길을 달리다 보면 금방 레드 마운틴 와이너리에 닿는다. 혼자 야무지게 달려 도착한 산속의 와이너리에서 와인 시음을 몇 잔 하고 숨을 고르면 이만한 행복이 또 없는 것 같다. 차가운 와인 덕에 맺힌 와인 잔의 물기가 맑고 산뜻하다.


 동네에 내려와 미얀마식 쌀국수를 주문해 먹는다. 국숫집 딸내미처럼 보이는, 이제 막 국민학교에 입학한 듯한 꼬마 숙녀가 초록 스커트와 흰색 셔츠의 교복을 입고 나를 관찰한다. 큰 눈망울에 가득한 호기심이 반짝거린다. 일반적인 동남아의 쌀국수와는 다른, 쫀득하면서 두툼하고, 또 얼큰한 쌀국수를 정신없이 먹고 있으니 꼬마 숙녀가 내게 눈으로 말을 건다. 영어를 배우고 싶다고 하는 것 같다. 나는 ‘나도 영어 잘 못 한다’고 눈빛으로 말해줬다. 하지만 실망하지 않은 듯 곧 공책을 가져와 옆 테이블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긴 머리의 예쁜 여자를 그려서 내게 주었다.


 다음날 바간으로 옮긴 나는,  작은 노상 바이크 샵에 가서 자전거를 빌렸다.  날따라 운이 없었는지 자전거를 빌리고 가게 앞에서 타자마자 나무에 가서 박았다. 자전거가  전자동 오토바이처럼 제멋대로 움직였다. 아주머니는 깜짝 놀라서 뛰어오더니 “, , ” “마이 , 모터사이클 반복하셨다. 대충 망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아들이 나타났다. 아주머니는 내게 대뜸 오토바이와 아들을 같이 빌려 주셨다. 바이크 배상비가 아닌, 바이크와 아들을 동시에 대여(?)해주는 서비스였다. 언럭키가 럭키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덕분에  커다란 역사 도시 ‘바간 편안하고  무섭게 여행했다.


 미얀마 여행이 좋았던 이유는 결국 ‘사람’ 때문이었다. 누군지 도통 알 수 없지만, 어딘지 모르게 모두 연결되어 있는 듯한 사람들의 모습. 그곳 어디에나 ‘이웃의 모습’이 있다. 벤치에 앉아 셀카를 찍고 있노라면 곁에서 옥수수 먹다가 내 핸드폰을 신기하게 보던 소수 민족 할머니들의 수줍은 미소가 잊히지 않는다.


 소수 민족 할머니와 자전거 가게 아주머니 가족, 그리고 꼬마 숙녀의 안위가 궁금하다. 혹시라도 ‘꼬마 숙녀’와 나의 하루 가이드가 되어준 ‘자전거 집 아들’이 도시에 공부하러 갔다가. 그들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용기 내 세 손가락을 펼쳤다 다치지는 않았는지 두렵다. 혹시라도 할머니들이 시골 마을에 불 지르고 발뺌하는 군부의 희생양이 되진 않았는지, 그들의 손자 손녀가 인세인 교도소에 끌려가 이가 부러지고 쇄골이 깨지는 고문을 당하진 않았는지 초조하다.


 그들은, 그들의 당연한 권리를 위해 목숨을 걸고 투쟁하고 지켜내고 살아내고 있다. 벌써 다섯 달째 이어지는 쿠데타로 죄 없고 정의로운 시민들이 희생 당하고 있다. 군부는 차마 입에 담기 힘든 만행을 저지르고 있다. 우리는 그들의 만행을 낱낱이 지켜봐야 한다. 민간인을 향한 총격, 폭행, 성 고문, 그리고 그 앳된 시위대의 얼룩진 얼굴을 언론에 전시까지 하는, 뻔뻔함과 무자비함을 미얀마 국내가 아닌, 온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고 계속해서 말해줘야 한다.


 미얀마 국민들은 한국의 과거와 현재가 미얀마의 희망이라며. 제발 지켜봐 주기만이라도 해 달라고. 호소한다. 지금 이 순간, 살았을지 죽었을지 모를, 혹은 두려움에 떨고 있을지 모를, ‘인레’와 ‘바간’의 이웃들, 미얀마의  국민들을 위하여 내가 한국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그들이 ‘희망’이라고 하는 ‘한국인’으로서 끊임없이 지켜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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