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그림 그리기를 시작했다. 코로나로 탱고를 조금 덜 추게 되면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아침마다 천변을 산책하는 것 외엔 쉬는 날의 일정에 별다른 활기는 없다. 올초부터 시작한 ‘글쓰기’는 매일 같이 쌓인 수업 자료에 읽기도, 쓰기도 버거워 쉬는 시간에는 활자를 좀 멀리 하는 중이다.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글을 좀 잘 쓰고 싶다는 마음 때문에, 많은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글은 쓰지도 않으면서 감정부터 앞선다. 그 감정을 뚫고 글을 쓰더라도, 먼저 무슨 이야기를 할지 결정하고, 그 다음엔 글의 큰 틀을 생각하고, 이후에는 서사 방식을 선택하는 이 과정이 매번 너무 유사해 지루하다. 결과물도 비슷할 것이다. 거기에다가 보편적으로 공감 받을 수 있는, 인간애가 넘치는 글을 쓰려고 하니 뼛속까지 모범생이 되어야 할 것만 같다.
특히나 내가 어려움을 느끼는 부분은, 내가 글을 쓸수록 사람들이 나에게 기대하는 어떤 ‘착한’ 이미지가 있는 것 같다는 점인데. 이럴 때면 나는 인내심도 부족하고, 까탈스럽기도 하며, 세상에 무관심하다고 명명백백 적어놓고 싶다. 글을 공개적으로 쓰기 시작하면서 주위의 평가에 대해 의식하기 시작했다. 본래의 나보다 더 깨어 있는 것처럼, 혹은 세상에서 제일 겸손한 것처럼 행동하는 내가 역겹다. 가끔은 아무도 나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고, 기대하지도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나에 대해 아주 냉소적인 글을 쓰고 동네방네 소문내고 싶다.
이런 이유로 생각보다 글쓰기는 나를 자유롭게 하지 못하는 취미이다. 사실, 나 역시도 이런저런 글을 찾아 읽다 보면, 역시나 내 마음을 사로잡는 글은 ‘착한 글’인데, 문장을 아름답게 꾸미고 정돈하는 것보다 중요한 게 글에 드러나는 ‘심성’인 것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나도 글을 쓰다 보면 그런 착한 마음을 갖고 싶고, 따라하고 싶다. 하지만, 동시에 내면의 나는 ‘너는 그렇지 않잖아. 솔직해져’라고 소리친다. 그래서인지 나는 ‘나’의 못난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다 같이 통쾌하게 비웃고 싶다. 아마도 다른 쓰는 사람들의 훌륭한 성찰이나 따뜻함, 세상에 대한 용기 있는 목소리 등에 대한 열등감일 수도 있겠다.
나는 내가 아름답게 미화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기대는 꼭 무겁게 젖은 옷을 입은 것만 같다. 하지만, 열흘 전부터 시작한 ‘그림 그리기’는 꼭 나를 있는 그대로 넣어주는 것 같다. 어떤 배경 지식도 없이, 무작정 빈 캔버스에 그리고 싶은 대로 그리고 나면, 세상에 어떤 편견도 선입견도 없는 하얀 캔버스가 나를 안아주는 것 같다. 어떤 잣대 없이 나를 온전히 수용해 주는 것은 어쩌면 빈 캔버스뿐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글쓰기의 흰 종이도 올초에는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