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냄새
결혼 후에 달라진 점이 있다면 틈틈이 엄마가 보고 싶다는 것이다. 엄마는 8년 전에 서울에서의 일을 접고 시골로 내려갔다. 거기에 나도 중간중간 해외에서 지냈기 때문에 따로 지내는 것이 익숙할 대로 익숙한데도 엄마가 보고 싶다. 타국에서 홀로 지낼 때에도 엄마에게 보고 싶다고 말한 적이 없었다. 보고 싶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보다 엄마가 늘 내 곁에 있는 것만 같았다. 나는 결혼 전까지 엄마와 떨어져 지내도 크게 분리감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엄마가 결혼식에서 읽어준 편지 때문일까. 엄마는 지난봄 나의 결혼식에서 당신으로부터 나를 완전히 내보냈다. 32년 전 엄마 뱃속에서 나를 내보냈듯 엄마와 내가 연결되어 있던 ‘붉은 줄’을 그 편지로 다시금 잘라낸 것 같았다. 편지에는 아픈 말이 하나도 없었다. 엄마에게 내가 도달한 순간부터 내가 엄마에게 ‘보배’가 아니었던 순간이 없었다는 것, 커다란 느티나무 같은 남편이 항상 나를 예쁘게 봐주어 고맙다는 것, 그리고 이제 ‘보배’와 ‘보배의 보배’가 반듯한 두 알의 피땅콩처럼 잘 지내라는 이야기였다. 덧붙인 ‘보배를 잘 부탁한다는 말과 더 이상 얘 걱정 안 한다’는 말이 섭섭하게 들렸다.
엄마의 속마음을 가장 애틋하게 들은 날이었는데, 이상하게도 나는 그날부터 ‘엄마 딸’이 아닌 ‘남편의 보배’가 된 것 같았다. 난생처음 엄마와의 분리감을 느꼈다. 내가 엄마로부터 떨어지고 싶어 한 적은 있어도, 엄마가 나를 내보낸 일은 없었기에 기분이 묘했다. 간혹 친구들 중에 결혼하면 엄마가 보고 싶어서 울기도 하고, 그래서 갑자기 친정에도 갔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난해했던 적이 있는데, 이제는 이해가 되었다. 결혼식 이후 나도 종종 엄마가 그리웠다.
어제는 엄마에게 줄 그림을 그렸다. 엄마의 시골 황토집에 놓을, 엄마 냄새를 그린 그림이었다. 자연을 좋아하고 겁이 없는 엄마는 파스텔톤의 소녀 느낌이다. 흰색, 노란색, 황토색, 그리고 약간의 푸른빛을 섞어 완성하니, 옅은 분홍의 색감이 나왔다. 엄마와 잘 어울렸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나는 무척이나 편안하고 즐거웠다. 사실 지난번엔 다른 이에게 줄 그림을 그리는데 머릿속이 복잡하고 상대가 어렵게만 느껴져서 결국 그림이 허공으로 떠버렸다. 결국 그건 건넬 수 없는 그림이 되었다. 엄마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 이런 확신은 나를 편안하고 행복하게 한다.
가족으로부터 느끼는 행복감과 편안함은 아마도 세상에 존재하는 가치 중 유일무이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어떤 실수를 하든, 누군가는 그 실수마저 사랑해줄 거라는 확신이 들 때 그와 자유로운 일체감이 든다. 아마도 그 자유로움과 일체감은 깊은 신뢰에서 오는 것일 듯하다. 결혼 후에 나는 엄마로부터 받은 그 신뢰와 에너지를 조금씩 남편으로부터 받으려 한다. 남편의 의사는 아직 물어보지 않았지만, 나는 이제 언제든 편안하게 발 뻗을 곳을 찾고 싶으면, 엄마보다도 남편을 우선 찾을 생각이다. 더불어 엄마와 쌓아온 사랑의 시간만큼 남편과도 그 시간을 견고히 쌓으려 한다.
아마도 나는 엄마와 끊어진 붉은 줄을, 빨간 인연의 실로 엮인 남편에게 이어 붙이려는 중인 것 같다. 연인으로서의 실이 새빨간 얇은 실이었다면, ‘가족’으로서의 그것은 ‘실’이 아닌, 푸릇한 탯줄과도 같은 두터운 ‘줄’일 것이다. 그 줄을 통해 나 역시도 남편에게 무한정의 신뢰와 사랑을 보내 주어야겠다고 다짐한다. 아마도 요즘 내가 엄마를 그리워했던 이유는, ‘실’이 ‘줄’이 되는 과정에서 오는 혼란이 그리움으로 나타난 것이 아닐까 싶다. 나와 남편의 ‘줄’이 점점 더 따뜻해지고, 단단하고, 건강해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