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 삼척의 산불이 빨리 진화되기를 바라며
어릴 때 집에 큰 불이 난 적이 있다. 고등학교 2학년 여름 어느 수요일. 학교를 마치고, 버스에 내려 동네 어귀로 걸어 들어가는데 이웃 아저씨께서 “연락 받고 왔어? 빨리 가봐. 너희 집에 불났어!”라고 하셨다. 나는 그냥 웃으면서 “에에..? 네!”라고 대충 대답을 했던 것 같다.
‘이제 들어오냐, 밥은 먹었냐’ 정도의 인사를 주고 받을 줄 알았는데, 아저씨께서는 다급하지도, 놀라지도 않으시고 약간 벙찐 느낌으로 말을 전하셨다. 나는 안 믿었다. 웃었던 것도 같다. 그날따라 나는 학교 체육 시간에 핸드폰을 압수 당해 아무 연락도 받지 못 했다. 나는 아저씨의 말을 듣고도 집에 들어갈 때 뛰지 않았다. 머릿속에 물음표만 그리면서 땅바닥을 보면서 걸었던 것 같다.
어느 순간 응시하던 시멘트 도로에 검은 물이 흐르고 있는 걸 보았다. 그제야 우리 집에 불이 난 게 진짜인가 싶었다. 집 앞에는 사람들로 붐볐다. 날 가장 처음 발견한 동네 똘똘이 큰엄마가 대뜸 내 입에 청심환을 넣어 주셨다. 큰오빠는 집에 여동생이 있는 것 같다며 들어가지 말라는 소방관 아저씨들과 실랑이를 하고 있었고, 엄마는 황망히 집을 응시하고 있었다.
집에 불이 난 게 정말이었다. 집은 이미 활활 타고 있었고, 무너진 천장에서 지붕은 찾아볼 수 없었다. 내가 등장하자 그제야 큰오빠는 소방관 아저씨들과 실랑이를 멈췄고, 엄마는 담담했던 것 같다. 집이 불타던 모습은 그 뒤로 더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냥 그날 저녁엔 다같이 소고기를 먹었다. 무슨 소고기냐고 하니까 엄마는 가족 누구 하나 다치지 않아 다행이라고 했다.
그 후 다시 집을 짓는 동안, 우리는 뒤에 세를 주던 방 두 칸짜리 집에 다섯 식구가 살았다. 나는 엄마 아빠와 자고, 두 오빠는 다른 방에서 잤다. 얼마 뒤 우리는 다 같이 가족사진을 찍으러 가기도 했다. 아빠는 종종 술에 취해 수돗가에 쓰러져 울었고, 엄마는 대학생 1명과 고등학생 2명이 학교 생활에 지장이 없게끔 더 열심히 일했다. 나는 텔레비전이 없는, 아니 아끼던 피아노도, 겨울 코트도, 친구들과 주고 받은 편지들까지 모두 사라진 집에서 빌려온 소설책만 읽었다.
그래도 그 시간들을 버틸 수 있었던 이유가 있다. 나도, 우리 엄마도, 아빠도 모두 그 와중에 웃을 수 있었던 이유는 동네 사람들 덕분이었다. 숟가락 젓가락까지 다 타버린 집을 보면서 이웃들은 플라스틱 소쿠리, 수저 세트, 수건, 휴지, 음식, 반찬통 같은 것들을 가져다 주었다. 당장 모든 게 필요했던 상황에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 아저씨들은 많은 걸 챙겨 주었는데, 그럴 때마다 우리는 웃으며 감사 인사를 할 수 있었다. 그 시간마저 없었다면 우리 집은 우리끼리 고립되어 다 같이 울고만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때 받았던 도움과 그때 느꼈던 막막함이 종종 생각날 때가 있다. 특히 주변에 불이 나거나 하면 손이 저릿해지면서 하던 일을 멈추게 된다. 사람이 참 간사한 게 모든 재해는 다 상상 이상의 아픔을 가지는데 나는 유독 화재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울진에서 난 산불에 며칠째 마음이 동한다. 갑자기 터전을 잃고, 이재민이 되어버린 분들의 막막함이 공기처럼 곁에 맴돈다. 내가 18살에 받았던 작은 손길들이 그들에게도 간절할 텐데 하면서 말이다.
산불은 여전히 진화되지 않았고, 불타는 터전을 가만히 바라볼 수밖에 없는 그곳의 사람들을 위해, 그곳 바깥에 있는 사람들은 작은 무엇이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크고 작은 기부도, 봉사도, 하다 못해 플라스틱 소쿠리나 수저 세트도 모든 것이 귀하고 소중할 것이다. 무엇보다 먼 이웃들이 서둘러 내미는, 희망의 손길이 어서 빨리 닿아야 할 것이다. 이웃이 절망하고만 있지 않도록 산 밖의 사람들이 관심과 연대를 양껏 보낼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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