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때가 있다. 모든 게 내 뜻대로 되지 않아 세상이 바뀌어 버린 것만 같은 날. 아무것도,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은 날. 기다리던 봄이 왔는데, 주변이 어째 조금 더 황량해진 기분이다. 집에 들어오는 길에 노오란 라넌큘러스를 한 다발 사 왔는데 어째 꽃송이가 꽂혀 있는 화분만 화사하고, 나도, 꽃 아래의 수납장도, 하늘도, 공기도 모든 게 회색빛으로 무겁게 침전하는 것 같다.
왜인지 곧 세상이 더 아파질 것만 같다. 길을 걷는 절반의 사람들은 나와 전혀 다른 생각들을 가진 사람들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괜히 걷는 내내 스스로의 모습을 검열하게 된다. 조금 더 아무렇지 않아야지. 아무렇지 않게 보여야지. 우연히 아침 일찍 만난 지인의 얼굴이 꽤나 어두운 걸 보며 뜻밖의 동지애와 위로를 얻었다. 나도 그에게 위로가 되었을지는 모르겠다. 나는 그저 밝게 웃었다. 즐거워 보였을 터이다.
노란 꽃을 사고, 날이 따스하고, 햇볕이 느껴지는 각도에서 어느새 봄날이 바투 온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예쁜 꽃 사진과 함께 한숨을 토해내는 글을 sns에 올리고 싶었지만, 멈추었다. 나와는 다른, 내가 모르고 있을 내 친구의 세계관이 조심스럽다. 우리 사이에 어떤 간극이 있는 게 당연할 수도 있기에 선뜻 토해낼 수 없다. 내가 내 가족의 세계관을 명확히 모르는 것처럼, 친구와 나 사이에 어쩌면 당연하게도 있을 간극이 두렵기도 하다. 이럴 땐 춤이라도 춰야 할까. 열정적으로 모든 걸 망각하고 싶은 순간으로 가득한 하루다.
바보처럼 들릴 수 있는 소리지만, 이럴 때 나는 탱고가 간절하다. 그저 상대방과 음악, 그리고 춤추는 순간에만 집중하다 보면 복잡하고 침침한 것들은 금세 잊힌다. 꽉 막힌 내가 아닌, 어느새 개방된 ‘나’로 금방 돌아올 수 있을 것만 같다. 상대방과 포옹을 하고, 함께 음악을 듣고, 그 음악과 춤에 나의 정서를 힘껏 넣어 토해내고 나면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되는 것도 같다.
이번 주에는 아무래도 밀롱가에 콕 박혀 춤을 춰야겠다. 춤을 추는 순간만큼은, 서로와 서로 사이를 구분하는 경계선 따위 없다. 빨강도 파랑도 노랑도 없다. 서로에게 개방된 너와 나만이 있을 뿐이고, 서로에게 연결된 둘은 온전히 하나의 우주를 만들 뿐이다. 그 우주는 아마 인간사, 모든 것으로부터 도피된 세계로, 온 우주를 통틀어 가장 비생산적이고도 아름다운 세계일 것이다. 오늘 밤에는 유독 춤을 추고 싶다. 참으로 춤을 추고 싶은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