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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배 Dec 20. 2023

출산에도 탱고?

출산을 했다. 하루 꼬박 진통을 하고 아기를 만났다. 진통 중에는 이 고통이 영영 끝나지 않을 것 같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수십 번은 들었지만, 아기 머리가 보인다는 조산사 선생님의 말씀에 힘을 냈다. 뜨끈한 무언가가 나오니, 머리가 나왔으니 한 번 더 힘을 내보자고 하는 말에 한 번 더 젖 먹던 힘까지 끌어냈다. 보통은 아기를 만나는 순간이 황홀하다고 하지만 나는 이제 살았다는 안도의 마음이 먼저 들었다. 따끈한 아이가 내 품에 올려지고, 그제야 기쁨이 차올랐다.


너였구나. 열 달 동안 내 안에서 함께 숨 쉬고 먹던 친구가. 반가워. 고생했어. 애썼어 아기야.


아기를 무사히 만나게 해준 선생님들에게 감사하다는 말, 아기에게 고생했다는 말, 애썼다는 말을 아기를 품에 안고 연신 읊조렸다. 내 몸을 등 뒤에서 받쳐 주던 남편은 이제 막 뱃속에서 나와 꿈틀거리는 아기를 보며 웃었다. 그 순간이 현실적이지 않았다고 한다. 틀어놓았던 조용한 음악에 아기의 거센 울음소리, 생동하는 움직임, 어두운 조명까지 모두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 같았다고 했다. 나는 귓가에 남편이 속삭이던 목소리의 기운만이 기억난다. 남편이 내게 어떤 말을 했는지 정확한 내용은 모르겠지만 어떤 뜨끈한 기운이었던 건 확실하다. 환희와 안도가 기화된다면, 그 온습도는 뜨끈함이지 않을까.


출산을 하면서 듣고 싶어했던 탱고 음악은 아주 잠깐 들었다. 프레세도의 카프리 섬(Isla de Capri_Osavaldo Fresedo)이 나왔을 땐 즐거웠던 이탈리아 여행이 떠올라 나도 잠깐 웃었던 것 같다. 남편 품에 안겨 눈물 콧물 흘리며 있다가 오랜만에 고개를 들어 남편과 눈을 맞추고 “카프리 섬이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음악을 틀었던 건 진통 중에 아기의 움직임이 태동 검사에 잡히지 않아서였다. 출산을 도와주시던 둘라님은 아기가 잠든 것 같다고 했지만, 음악을 트니 얼마 지나지 않아 아기는 다시 활발하게 움직였다. 탱고 음악만 들었다 하면 뱃속에서 발차기가 세졌던 태동을 기억한 남편의 아이디어였다.


38주 차에 이미 초음파 상으로 3.77kg으로 예상되어 상위 5%에 속하는 큰 아기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터였다. 예정일이 열흘이나 지나 41주가 넘으니 그러지 않은 척해도 아주 초조했다. 주변 가족의 연락을 모두 남편에게 받아달라고 할 정도로 불안했다. 혹시 내가 달콤한 음식을 먹어서 아기가 감당 못하게 커지는 건 아닐지 불안해 식단 관리를 더 철저하게 했다. 주말에는 남산에 가 계단을 오르고, 또 다른 날에는 남한산성을 올랐다. 출산을 진행 시키기 위해 남편 퇴근 후에는 병원 연계 조산원에 여러 차례 방문했다.


파인애플이나 매운 음식을 먹으면 자궁 수축이 올 수 있다고 해 괜히 파인애플도 세 통이나 먹고, 임신 기간 내내 안 먹던 매운 음식도 연달아 먹었는데 아기는 기별이 없었다. 그러던 41주 3일 차가 되는 새벽,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초산의 경우 진통 간격이 5분 내외면 병원으로 가야 하는데 나는 어쩐지 그보다 간격이 좁은 듯했다. 밥을 조금이라도 먹고 오는 것이 좋겠다는 병원 측 연락을 받고, 아침 출근 시간 무렵에 병원으로 향했다. 밥이 잘 넘어가지 않는 정도의 진통이었다.


병원에 도착한 뒤부터 진통은 3분 간격으로 찾아왔다. 조산사 선생님도, 둘라님도 지금보다 진통의 세기가 훨씬 세져야 아기가 나온다고 했다. 병원 도착 후 출산까지는 총 16시간이 걸렸는데, 진통 간격은 내내 3분으로 쉴 틈 없이 괴로웠다. 보통은 진통 중간중간에 시간 텀이 있어 잠들기도 하며 버틴다고 하는데, 내게 그런 여유는 없었다. 남편의 손을 꼭 잡고, 땀나듯 흐르는 눈물을 막지도 못하고 숨을 내쉬었다. 여느 드라마에서처럼 살려달라고 소리칠 힘도 나에겐 없었다. 남편 손을 쥐고 젖은 눈을 감고 있을 뿐이었다.


그날 자정이 넘어서도 아기는 완전히 내려오지 않았다. 허리는 부서질 것 같은데 출산까지 너무 오래 남은 듯해서 선생님들에게 어떻게 하면 아기를 낳을 수 있는 거냐고, 제가 잘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좀 알려달라고 물었다. 내가 선택한 자연주의 출산은 무통 주사나 촉진제, 회음부 절개 등을 하지 않고 최대한 아이와 산모가 주체적으로 출산할 수 있도록 기다려준다. 진통이 오면 핫팩을 대고, 물을 마시고, 호흡을 하며 남편의 마사지를 받는다. 진통을 줄이기 위해 욕조에 들어가 몸을 이완하기도 한다. 이미 모든 방법을 다 썼지만, 견딜 수 없겠다 싶었다. 의사 선생님께 말씀 드려 수술을 해주면 안 되느냐고 여러 차례 물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든 감각을 잃어버렸을 무렵 남편이 등 뒤에서 말했다.

 

괜찮아. 지금 아기 머리가 나왔대. 정말 조금만 더 힘내면 돼.


진통을 겪는 동안 들은 모든 말들은 뿌옇게 흐리게 들렸는데 이 말만큼은 명료했다. 어느새 두 명의 조산사님과 한 명의 둘라, 그리고 남편 총 네 명이 내 몸을 둘러싸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의사 선생님이 들어왔고, 아기가 내 품에 안겼다.


출산 예정일은 12월 2일이었지만 아기는 결국 열흘 늦게 느긋하게 나왔다. 아기는 간절히 바라던 대로 ‘무사히, 무탈하게’만 만나자던 남편과 나의 바람처럼 세상에 무사히 나왔다. 24시간 진통에 탯줄을 감고 있었어도 산소 포화도 한 번 낮아지지도 않고 아주 건강했다. 아기는 열 달간 의지해온 엄마의 몸으로부터 첫 독립을 했다. 아빠의 도움을 받아, 엄마와 연결된 탯줄을 끊어내고 마침내 안전하고 편안하게 바깥공기를 마셨다.


남편과 나는 출산 예정일이 아르헨티나 국민 탱고 음악가 오스발도 뿌글리에세와 생일이 같다며 내심 설레 했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12월 11일이 다가오니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사랑 받은 탱고 가수 까를로스 가르델과 음악가 훌리오 데 까로의 생일과 같으려나 하고 또 한 번 기대해 보았지만 그렇게 되지도 않았다.


아기는 엄마 아빠의 취미 생활이나 우리의 소망 같은 건 모를 것이다. 그저 스스로 잘 지내다 시기가 되면 한발 한발 자기의 걸음으로 세상에 나아갈 것이다. 남편과 나는 아가가 내딛는 그 고유한 걸음을 그저 기다리며 안전하게 수용해주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 싶다. 우리의 기호나 취미 생활과는 무관하게 말이다.


환영해, 아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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