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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배 Feb 16. 2024

모래알 같은 초보 엄마

생후 65일

아기가 운다. 밤 11시 30분 무렵이 되면 요며칠 아기는 무서운 꿈을 꾼 것처럼 엉엉 운다. 신생아 때부터 배고플 때 말고는 잘 울지 않던 아기라 눈물이 송글송글 맺혀 우는 모습에 깜짝 놀랐다. 얼른 안아 달래보았지만 쉽게 잦아들지 않았다.


낯설게 생긴 일에 얼른 인터넷이라도 뒤져 보니 말로만 듣던 ‘원더 윅스(Wonder Weeks)’인 듯했다. 생후 20개월까지 총 10번 정도 이유 모를 울음이 심해질 때가 있는데 이때를 원더윅스라고 한단다. 아기가 급성장하는 시기라 성장통 비스무레한 것이라고 했다. 아기는 이제 8주 차에 들어섰고, 대강 원더윅스가 7~9주 차에 온다고 하니 시기가 얼추 맞는다.


구슬프게 울던 아기도 새벽 1시가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콜콜 잠이 든다. 아기의 숨소리를 듣고 있으면 컴컴한 이 방이 자궁 속인지 방 안인지 묘한 기시감이 든다. 아기가 잠에 깊이 빠져든 것 같으면 그제야 나도 자리에 누워 잠을 청한다. 얼른 자고 싶지만, 잠들기 전까지 손바닥만 한 핸드폰을 꼭 쥐고 그날 찍은 아기 사진을 실컷 눈에 담는다. 이 사랑스러운 아기 모습을 세상에 알리고 싶어 손이 간질간질하다.




오전 7시 무렵이 되면 아기가 꼼지락거린다. 끙끙대며 꿈틀대는 소리에 얼른 일어난다. 잠귀가 어두운 내가 아기의 기척만으로도 쉽게 깨는 걸 보면 엄마의 본능이라는 게 정말 실재하는 것 같아 놀라울 뿐이다. 갓 일어난 아기는 꿈지럭대다가 나를 발견하고는 가만히 멈춰 바라보더니 생긋 웃는다. 백일도 안 된 아기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얼마나 개구쟁이가 될 예정인지 눈에 장난이 가득하다. 그 얼굴을 보니 잠이 확 깨는 게 아침에 곱게 간 사과 양배추 주스를 시원하게 한 잔 마신 기분이다.


아기가 배고파 울음이 터지기 전에 얼른 침대로 데려가 수유를 시작한다. 수유를 마치면 꿈결에 맘마를 먹던 아기는 다시 잠들고, 나도 조금 더 눈을 붙인다. 그리고 아기가 다시 깨기 전, 늦은 아침에 일어나 청소기를 돌리고 물걸레질을 하며 아기가 깨기를 기다린다. 전에는 로봇 청소기에 손 놓고 맡겨놨던 일들을 이제는 매일 아침 직접 한다.


남편과 둘만 있을 때에는 대충 집이 정리만 되어 있으면 깨끗해 보였는데, 아기가 있으니 구석구석 먼지들이 눈에 쏙쏙 들어온다. 연약한 아기가 손을 빨면서 집안에 먼지를 왕창 먹을까 걱정되어 그냥 둘 수가 없다. 어린 시절, 집안을 쓸고 닦고, 부지런히 바쁘게 움직이던 엄마가 왜 늘 그래야만 했는지 조금씩 이해가 되는 요즘이다.




아기를 돌보는 일은 그 자체로 귀중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특별한 것이 있다면 수유가 아닐까 싶다. 모유 수유가 힘들다는 이야기를 진즉에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아기가 그만큼 아름답고 소중하게 느껴진다는 이야기는 실은 들은 적이 없었다. 세상에 떠다니는 말에는 ‘육아의 고통스러움’과 ‘아기를 얻는 대신 잃게 되는 자유’에 대한 혐오로 가득한 것 같았다. 아기를 낳고 돌보다 보니 육아는 생각보다, 아니 생각 이상으로 행복했다.


품에 안긴 아기가 엄마로부터 받아 먹는 하얀 액체만으로도 건강하게 자라는 걸 보는 것이 신기하고, 맘마를 먹기 전 울음을 그치고 얌전히 기다리는 모습을 보는 것도 즐겁다. 퇴근한 아빠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다 함박웃음을 짓는 모습도 그저 경이로울 뿐이다. 아기를 돌보고 있으면 나는 마치 원더우먼이나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된 것 같은 착각이 든다.


힘들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한동안 집에서 아기만 돌보다가 오랜만에 바람이라도 쐬러 나가면 혹시 내가 감기에 걸려 아기에게 옮기진 않을까 골목의 사람들이 모두 두렵게 느껴지고, 수유 의자가 아닌 카페 의자에 기댄 내 허리의 감촉이 낯설어 벙찌기도 한다. 몇 년 간 사용하던 볼펜을 쥐어보니 새삼 생경하다고 우울해하다가 문득 수유 시간이 다가와 얼얼해지는 가슴 통증에 얼른 내 자리를 찾아가야겠구나 하며 속이 답답하기도 했다.


그렇게 잠깐의 외출을 마치고 돌아와 아기에게 수유를 하면 내 가슴팍에 올려진 아기의 조그만 손이 보인다. 세상에 나와 잡아본 것이라곤 엄마 손과 엄마 옷깃밖에 없는 작고 하얀 손이 말이다. 그제야 깨닫는다. 이 조그만 손에 연결되어 나는 어디에도 갈 수 없겠구나. 가만히 허겁지겁 나의 몸에 흐르는 따뜻한 액체를 오아시스를 만난 것처럼 꿀떡이는 아기를 보니, 나라는 모래알처럼 작은 존재도 아기에겐 이토록 특별하고 대단해질 수 있구나 싶다.


모래알처럼 하찮은 초보 엄마에게 의지해 생명을 이어나가는 이 존재가 고마워 괜히 돌봄에의 의지를 다진다. 아기의 조그만 손이 내게 닿아 있다면 언제까지고 힘을 낼 수 있지 않을까. 조금 답답한 날도, 피로한 날도, 우울해 울고 말 날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아기의 손이 오늘처럼 따뜻할 수 있도록 살뜰히 보살펴 줘야지 하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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