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결혼을 하고 2007년 3월, 남편의 공부 때문에 뮌헨에 갔다.
멋있는 유학은 아니고 뭣도 모르고 갔다. (이 이야기는 천천히...)
그런데 2007년 4월.
뮌헨의 중심가 마리엔플라츠에 위치한 백화점 지하 식품코너에서 김치를 만났다.
(우리나라로 치면, 신세계 본점 지하 슈퍼 혹은 압구정 현대백화점 지하슈퍼 같은 곳이다. )
소주컵 크기에 해당하는 1회용 종이컵에 배추김치가 작게 한 조각씩 놓여있었고
그 옆에는 "VITAMIN BOMBE"라고 쓰여있었다.
우리나라 말로 하면 비타민 폭탄이라는 뜻이었다.
이 때는 독일에서 김치를 편하게 먹고 다녀도 되는 시기가 아니었다.
그런 분위기에서 독일 백화점 지하 슈퍼에서 김치시식을 하다니.
심지어 위치가 치즈, 소세지 매장 건너편이었다.
누구의 기획일까?
너무 시대를 앞서갔는지,
뮌헨에 있던 4년 동안, 다시는 비타민 봄베를 만날 수 없었다.
그러고 나서 탱고 원정으로 인해 2023년, 십몇 년 만에 뮌헨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런데 정말 충격을 받았다.
독일의 국민슈퍼 알디에서 김치 삼각김밥을 파는 게 아닌가.
신기하고도 반가운 마음에 오니기리를 집었다. 심지어 나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존더 앙게보트 Sonderangebot , 특별할인 딱지까지 붙어져 있었다.
(유학생들 사이에서는 ㅈㄴ 앙게보트라고 불렀음.)
2유로가 안 되는 돈을 지불하고 얼른 밖에 나와 뜯어보았다.
그런데... 그런데...
연한 주황빛 주먹밥이었다. 군데군데 양배추로 추정되는 건더기만 들어있을 뿐.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 입 베어 물어보니
치킨무 국물에 김치국물 반 스푼만 너어 휘휘 저은 다음
양배추 찌끄래기 넣고 뭉친 맛이었다.
그래... 어떻게 감자와 맥주밖에 없는 독일에서 김치 주먹밥을 제대로 만들 수 있겠어.
내가 한국에서 나의 삶을 살고 있는 동안
김치는 독일에서 자신의 영역을 넓혀갔다.
물론 온전하지 않은 모습이 좀 많긴 했다.
길가에 김치 우동을 파는 곳이 많아졌다.
김치 오리기니 충격에 시켜 먹진 않았지만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나에게 익숙한 김치우동보다는 이런 스타일의 김치 우동이 많았다.
이게 김치 우동이라니.
문득 하와이안 피자를 처음 만난 이태리 사람이 이런 기분일까.
심지어 난 부끄럽지만 하와이안 피자를 좋아한다.
저 김치우동을 너무 맛있다며 먹는 사람도 있을 테지.
이 사진은 독일의 올리브영 데엠DM에서 파는 김치이다.
색깔과 내용물 크기만 봐도 어떤 느낌인지 알 수 있다.
이태리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까르보나라피자. 불고기피자를 봤을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
그리고 먹었을 때 맛있었을까.
궁금해졌다.
어쨌든 독일 길거리에 널려있는 김치에 나는 정말 놀랄 수밖에.
예전에 김치를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냄새 안 나게 만들 수 있을까
김치를 먹고 외출을 하면 꼭 샤워를 했었고
마늘을 아예 안 넣고 담그는 레시피까지 돌아다녔는데
내가 있던 뮌헨 시간의 김치는
내가 사랑하지만 잘 감춰야 할 대상이었다면
그 김치는 이제 뮌헨에서 어디서든지 만날 수 있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물론 모습은 고개를 갸웃갸웃하게 만들지만.
내가 10년 넘게 한국에서 낑낑거리고 사는 동안
김치도 10년 넘게 낑낑거리며 타지에서 살고 있었다.
내가 어렸을 때, 나는 내가 40 중반이 되면 어느 정도 모든 걸 갖추고 평온하게 살고 있지 않을까 했다.
딱히 이유는 없다. 40대 중반인 지금의 내가 60대의 내가 어떨까 기대해 본다면
누가 뭐라 해도 긁히지 않는, 노여워하지 않는 마음의 여유정도는 있을 거라고 믿고 싶은 마음이다.
그런데 저 뮌헨에 거주하고 있는 김치를 보니
한국의 온전한 김치가 나의 상상하는 바라면
뮌헨의 어설픈 김치는 나의 현재모습처럼 보였다.
그런 걸 보아하니
내가 60이 넘어도 여전히 물벼락 불벼락 같은 성격은 바뀌지 않겠구나.
뮌헨에 살고 있는 김치들을 기특하게 여겨야겠다.
그리고 문득
2007년 뮌헨 시내에서 비타민 봄베 김치시식을 기획했던 사람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졌다.
잘렸을까? 아니면 버티다 승진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