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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마튤립 Aug 04. 2024

바라만 보는 행복한 육아

100일간의 육아 감사일기 #14

그저 막연하게, 만약 아기를 낳는다면 엄마 아빠께 육아의 부담을 떠넘기지 않겠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오빠와 나 둘을 키우느라 애쓰신 두 분께 나의 할 일을 대신해 달라고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일도 육아도 함께 할 수 있게 나의 생활을 세팅해 놓고 원하던 시기에 아기를 무사히 만났지만, 그럼에도 초보 엄마아빠인 우리 둘이서 육아를 온전히 해나가기는 쉽지 않았다.


남편과 내가 원해서 낳은 아기였지만, 양가 부모님들께는 절로 효도를 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우리 아이를 낳았을 뿐인데, 특히 첫 손주를 맞이하신 우리 엄마아빠께는 더욱이 큰 선물을 드린 듯했다.


표현이 많은 엄마보다 더 표현이 많~은 아빠는 매일, '아기 덕분에 더 건강히 오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기가 태어나니 새로운 삶을 사는 것 같다, 아기가 없던 세상을 어떻게 살아왔었나..' 등등 수많은 표현들로 손녀딸의 탄생을 너무나 행복하게 반기셨다. 심지어는 100일이 채 안된 아기를 대신하여 <전지적 아기 시점>으로 아기의 생각을 길게 글로 남기실 정도였으니 말 다했다.


엄마께서는 동요를 접하지 않으신지 2-30년이 훌쩍 넘으셨을 텐데, 마치 동요 주크박스를 틀어놓은 것처럼 새로운 동요를 아기에게 끊임없이 불러주신다. 귀여운 율동과 함께 말이다. 엄마의 머릿속 한편에 있던 동요 저장소가 2-30여 년 전에 비활성화가 되었었는데, 손녀딸로 인해 다시 활성화가 된 듯하다. 지금도 엄마께서 아기에게 율동을 하며 동요를 불러주시면, 아기는 발을 동동- 손을 휘휘 빠르게 저어가며 신나서 몸 둘 바를 몰라한다.


30여 년 전에 나를 향하던 엄마 아빠의 모습이 이런 모습일까 생각하면 금세 눈시울이 붉어진다.

'이렇게 작았던 아기가 언제 커서 아기를 낳았을까'하는 생각을 하며 격세지감을 느끼실 부모님의 마음이 감히 상상되지 않는다. 아마 긴 세월인 듯했지만 지나고 나니 순식간에 지나간 느낌이시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과연 무엇인지, 조금 더 정리가 된다.


내가 일이 바쁘거나, 우리 둘에게 자유시간을 선사해주시려고 할 때 등등 SOS를 외치면 언제든 달려와주신다. 엄마아빠 두 분이 함께든, 두 분 중 한 분 만이든. 다행히 아기도 할머니 할아버지가 오시면 신나서 발을 동동 구르니, 할머니 할아버지도 기쁘게 그리고 즐겁게 아기와 시간을 보내실 수 있는 것 같다.


엄마아빠가 아기와 함께 장난치고 웃고 행복해하시는 걸 보면, 이런 장면을 자주 그리고 오래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아기가 커나갈수록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하는 시간들이 더 다채로워질 텐데 그 모습이 궁금하기도 하고, 그 모습을 보면 나의 어릴 적 모습과 엄마아빠의 30대를 몰래 훔쳐볼 수 있지 않을까 싶기 때문이다. 아기 둘을 키우느라 일하랴 정신없던 30대와, 편안한 60대의 모습은 조금 다를지 모르지만 사랑을 주는 모습은 분명 같을 테니 말이다.


'엄마 아빠! 이제 힘듦과 행복이 동시에 있는 육아 말고, 그저 행복하게 바라만 보는 육아를 하세요! 아기는 딸과 사위가 예쁘게 키울게요!'



오늘은 육아 감사일기 열네 번째 날이다.


엄마아빠가 집으로 오셔서, 다섯 가족이 함께 오전 오후 시간을 보냈다.

할머니 할아버지를 보고 반달 눈웃음과 보조개 쏙쏙 들어가는 해맑은 미소를 보내는 아기에게 오늘도 무장해제를 당하셨다.


새콤달콤한 귤을 가져오신 엄마는 어느새 아기 의자 앞에 앉아 아기에게 귤을 조금씩 잘라 입에 쏙 쏙 넣어주고 계셨고, 아빠는 남편과 함께 아기 침대 가드를 분해하여 빨래하는 것을 돕고 계셨다.


각자 할 일을 마치고는 한데 모여 아기를 두고 빙 둘러앉아, 아기의 이름을 부르며 서로 자기한테 오라며 개인기를 뽐냈다. 각각의 표정과 행동을 보면 볼 맛 나게 우스꽝스럽지만, 서로의 모습을 볼 새는 없다. 지금만큼은 아기에게 잘 보이기에 진심이니까.


두구두구두구두구, 오늘의 뽐내기 승자는 바로 할!머!니!


신난 할머니는 아기를 끌어안고 뽀뽀세례를 퍼부으셨다. 격한 할머니의 사랑을 받은 아기는 금세 할머니의 품에서 내려앉아, 또 누구에게 갈까 왔다 갔다 하며 고민을 한다.


그리고 또 선택당한 할머니! 오늘은 할머니의 날인가 보다.

그래 엄마는 내일 하루종일 아기에게 선택받을 거니 오늘은 양보해 드릴게요!


이렇게, 평범하지만 소소한 행복들로 가득 찬 일요일이 흘러간다.


다음 주에도 감사할 일이 가득한 한 주가 되기를 바라며, 모두 해피 선데이 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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