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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셀레네 Apr 22. 2019

바라만 봐도 너무 좋잖아

꽃을 하게 된 이유, 고민 많았던 시절

꽃은 화려한 다발이어도 한 두 송이의 심플한 양이어도 언제나 예쁘다.


대학생 때, 남자 친구에게 종종 선물 받았던 소담하고 앙증맞은 꽃들은 우리 집의 한편에 자리 앉아 잠시 가족이 되곤 했다. 그땐 꽃 관리하는 방법을 정확히 잘 알지 못해 시든 꽃이 있어도 그러려니 하며 함께 놔두었지만 그래도 그 꽃들이 주는 에너지는 참 남달랐다. 예쁘게 사진을 남겨보겠다고 찍어놨던 사진을 보면, 이상한 필터를 씌워 놓는 바람에 '이걸 예쁘다고 찍어놓은 색감인가..?' 싶을 정도지만 그때의 그 행복한 마음은 충분히 전해진다.

남자 친구에게 100일 때 받았던 꽃다발. 필터를 가득 씌워 색감이 안 담긴다..!

그때 당시를 생각하면 꽃을 보고 있는 게 마냥 좋았던 것 같다. 굳이 실제 눈 앞에 있는 꽃이 아니라 사진으로라도 예쁜 꽃들을 찾아 좋아요를 누르고 캡처를 하며 저장을 해 두는 게 좋았다. 다른 사람들이 연예인을 좋아하듯 그렇게 꽃을 열정적으로 좋아하기 시작했다.


꽃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이야기해보자면 사회 초년생 시절, 대학교를 갓 졸업했을 때로 돌아간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시작한 사회생활은 대학생 때 했던 인턴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인턴은 짧은 기간이기에 '끝'이라는 게 있고 사회생활이라는 것을 배워가는 시기였기에 별 다른 어려움이 있진 않았다.


그러나 본격적인 회사 생활은 그렇지 않았다. 평생 일을 해 나가려면 조금이라도 흥미롭고 발전적으로 느껴지는 업무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왔는데 그게 잘 되지 않아 현실과 이상에 괴리가 오기 시작했다. 어떻게 살아나가야 할까 이직을 언제 즈음해야 할까에 대한 고민으로 2-3개월을 보내며 회사를 다니던 찰나 우선 회사에서의 고민을 다른 취미로 풀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좋아했던 꽃을 일주일에 한 번씩 배우기로 결심을 했다.


언젠가 일기장에도 썼던 말이지만 회사를 가기 위해 아침에 집을 나서면, 돼지가 도살장에 끌려가듯 심적으로 너무나 괴롭고 힘들었다. 내 시간을 버리는 대가로 돈을 버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퇴근 시간이 조금이라도 넘기만 해도 좀이 쑤셔 그곳을 빨리 벗어나려는 생각뿐이었다.


그와 반대로 꽃을 배우러 갈 때에는 오전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몸도 개운하고 가기 전부터 행복한 마음이 가득했다. 누구라도 그 예쁜 꽃을 보고 만지고 있노라면 행복해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싶긴 했지만 말이다. 한 번 두 번 꽃을 만지는 날이 늘어나면서 내 머릿속에는 늘 꽃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월 화 수 목 금을 꽃 생각으로 견디고 주말에는 꽃을 하며 행복과 기쁨을 마음껏 누렸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토요일 하루만을 위해 사는 것 같이 평일을 휙 휙 날려버렸고 점점 이직을 준비하고자 하는 마음이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단 하나의 생각만이 내 머릿속에 남았다.


 '꽃 하고 싶다.'


꽃 '버터플라이 라넌큘러스',  제일 좋아하는 소재 중에 하나인 '페니쿰'


20여 년을 살면서 지속적으로 무언가가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게 처음이었다. 초 중 고 대학생까지 반항정신없이 착하게(?) 남들이 하는 걸 불만 없이 해왔던 터라, 내 마음속에 좋아하는 다른 것이 생기다 보니 너무나도 혼란스러웠다. 그 무렵 화훼장식 기능사 시험 접수 날이 다가왔고 덜컥 시험을 접수하면서 스스로를 시험해 보기로 결심했다. 꾸준히 반복적으로 한 과제 당 수십 번씩 연습해야지 합격할까 말까 한다는 화훼장식 기능사까지 한 번에 합격한다면, 부모님께 더 당당히 이야기해보리라!라고 말이다.

다행히도, 기능사를 준비하면서 꽃이 질리는 마음은 없었다. 내가 원하는 꽃을 사용해서 내 스타일대로 만드는 시험이 아니라, 정해져 있는 꽃 정해져 있는 쉐입을 시간 내에 적절한 스킬을 사용해 완성해내는 시험이기에 간혹 연습 중에 낙오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들었다. 물론 연습을 반복하면서 가끔 지치기도 했지만 마음만큼은 항상 긴장과 기대의 연속이었다.


기어코 시험날이 다가왔고 부모님과 함께 꽃과 부재료들을 싣고 시험장으로 향했다. 알게 모르게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과 감사한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그 당시 엄마께서는 다른 회사 공채도 함께 준비하며 기능사를 연습하라고 말씀하시며 응원(?)을 해 주셨는데, 엄마의 마음이 어떤 건지 너무도 잘 알기에 더 마음이 무거웠었던 것 같다. 다신 오지 않을 그 순간에 절대 실수하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시험에 임했다. 다행히 연습을 많이 해서 그런지 시험 시작 시간을 기다리며 생겨났던 긴장감은 시험이 진행되면서 스르륵 사라졌다.


며칠 뒤 얼마 뒤 결과가 나왔고 다행히 한 번에 합격의 기쁨을 맛보았다.

화훼장식 기능사가 없으면 꽃을 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스스로를 시험하기 위해 그리고 자신감을 얻기 위해 준비했었기에 안도의 한 숨을 그때서야 뱉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후, 다른 회사를 가지 않고 본격적으로 꽃을 진짜 내 업으로 해보리라 마음을 먹고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길에 서게 되었다.





'바라만 봐도 너무 좋잖아'

by Florist Hy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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