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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셀레네 Jan 18. 2020

눈이 내리지 않아도 이상할 게 없는 요즘의 겨울

아파트 곳곳에서 썰매타던 시절을 그리워하며

어릴 적, 겨울이 되면 펑펑 쏟아지는 눈이 그렇게도 좋았다.

눈이 조금 쌓였다 하면 털장갑을 끼고 밖으로 뛰어 나가, 친구들과 함께 아파트 내 경사진 곳을 모두 찾아다니며 수도 없이 썰매를 탔다. 이미 누군가의 포대로 매끄럽게 다듬어진 눈 위를 내려갈 때는 전에 없던 스릴도 느낄 수 있었다. (종이로 된 쌀 포대는 눈 오는 날의 필수품이었다!)


펑펑 쌓여가는 눈에 썰매만 타면 아쉽지!

작은 손에서 만들어진 단단한 눈 뭉치는 눈 위에 굴려지고 또 굴려져서 어느새 사람만 한 눈사람이 되어 있었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겨울 잎들과 나뭇가지로 눈, 코 입을 완성하면 끝! 눈사람을 만들고 집에 들어가면, 내가 만든 눈사람을 누가 망가트리지 않았나 그렇게나 노심초사해했던 어린 시절이었다. 다음날 누군가가 눈사람에게 팔을 만들어 주어 행복했던 겨울날도 있었고, 누군가가 눈사람을 망쳐놓아서 슬펐던 겨울날도 있었다.


그때의 난, 투박한 스키 장갑보다 귀엽고 앙증맞은 벙어리 털장갑을 더 좋아했다. 때문에 눈놀이를 하러 나갔다 하면 얼마 안 돼서 털장갑이 눈에 다 젖어 얼어버렸다. 눈을 흠뻑 머금고 녹아버려서 축 쳐진, 차가운 털장갑을 끼고 놀다가 집에 들어가면 그제야 벌겋게 변해버린 손을 발견하곤 했다. 얼마간의 경험으로 눈이 오는 날 놀러 나갈 적에는 투박해도 참 따뜻했던 연 핑크색 스키 장갑을 끼고 나가게 되었다. (그래도 좋아했던 색의 장갑이라 꽤나 아껴가며 썼다)


기억이 조금은 조작되었을 수도 있지만 어릴 적 겨울날, 그곳에는 언제나 눈이 있었다.


가족 여행을 가는 길에 눈이 너무 많이 와서, 아빠께서 갓길에 차를 세우고 바퀴에 체인을 끼우셨던 그때가 여전히 생생하다. 언제는 눈이 너무 많이 내려, 바깥이 온통 동화 속 하얀 나라 같다는 생각도 했었다. 겨울엔 언제나 눈이 함께였기에, 눈이 없는 겨울은 결코 상상해보지 못했던 것 같다.




요즘의 겨울은

겨울이 맞나 할 정도의 은은한 날씨(+미세먼지)와 매섭게 불어오는 차디찬 바람, 그 양 극단에서 왔다 갔다 하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더더욱 함박눈이 한차례 펑-펑 쏟아지고 난 뒤의 고요함과 겨울이 주는 그 특유의 온기가 무척이나 그리운 나날이다.


내가 기억하는 어릴 적 겨울의 모습과 요즘의 아이들이 기억할 오늘의 겨울모습은 얼마나 다를까? 그 친구들에게는 어떤 겨울의 낭만이 남아있을까?


눈이 내리지 않아도 이상할 게 없는 요즘의 겨울,

이번 겨울이 끝나기 전에 누군가에겐 동심을 떠올리게 만들어주는, 또 누군가에겐 색다른 추억을 만들어주는 그런 하루가 너무도 간절해지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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