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중년백수 생활백서
백수가 되었다. 한자어로 白手. 흰 백(白)에 손수(手). 손에 든 게 없는 사람. 아, 이렇게 지금의 나의 현 위치와 상황을 적확하게 표현하고 있는 단어라니...
6개월 전, 나는 백수이기를 선택했다. 지극히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나의 행위가 현재의 나를 만들었다. 그래, 나는 백수이기를 선택한 사람이다. 비록 내가 백수로 산지 6개월이 넘은 지금도 ‘아주 잘했다’와 ‘그때 사직서 상신 버튼을 누르지 말았어야 했다’는 상반된 감정이 하루에도 수십 번 왔다 갔다 하지만, 어쩌랴 지금의 나를, 나의 상황을, 나의 선택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사전적 의미로 백수는 “만 19세 이상의 성인이면서 직업이 없는 사람들을 뜻하는 말로, 정확한 백수의 의미는 근로능력이 있지만, 일정한 수입이 없는 모든 사람을 지칭한다. 백수와 의미가 100% 일치하지는 않지만, 과거에도 일제강점기에는 룸펜, 잉여인간, 조선시대 이전에는 한량, 건달, 기둥서방 등 백수와 비슷한 유형의 인간들을 가리키는 단어가 있다.(나무위키, 검색일: 2023.9.11.)”
백수로 살기로 결심하고, 아직 백수가 되지 않은 시점(사직서를 제출한 후 퇴사일까지의 기간)에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인생 한번 살면서 여러 가지 해보는 거다. 멋진 커리어우먼으로 살아도 봤고, 성실하고 책임감 강한 인물로도 살아도 봤다. 공공기관에서 시키는 일이나 해야 할 일을 잘하는 직원이기도 했으니, 이제 다른 것도 해볼 때가 되었다. 이제 시작이다. 백수로서 한량도 되어보고 기둥각시도 되어보고 잉여인간도 되어보자. 그게 뭐가 어렵겠나.”
그리고 눈을 감아 상상했다. “느즈막이 눈을 뜬다. 바로 일어나는 일은 없다. 엎드려 누워 손가락만 까딱까딱하며 휴대폰을 연다. 보고 싶었던 시리즈 물, 영화를 마음껏 본다. 집 곳곳에 책이 쌓여 있다. 나는 이 책을 읽다가 저 책을 읽는다. 아, 책에 파묻혀 있는 나의 모습이라니... 남편 월급날이다. 오늘은 특별히 마트에 가서 이것저것 사 온다. 요리를 한다. 식탁에 풍성하고 그럴듯한 음식이 펼쳐진다. 가족이 모두 놀란다. 맛있다고 성화다. 집안에 쿠키 굽는 냄새가 가득하다. 방금 구운 쿠키에 따뜻한 커피 한 잔, 여유로운 오전 11시..”
이것을 실행으로 옮기다가 나는 한량과 기둥각시로서의 생활이 나와 맞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술도 마셔본 사람이 잘 마시고, 노는 것도 놀아본 사람이 더 잘 논다고, 아침형 인간에 매일 부지런히 뭔가를 해야 하는 나는 그렇게 꿈꾸던 생활을 며칠 하다가 답답하고 지루해서 못하겠다고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그리고 나의 기질과 습관대로 나는 나만의 백수생활을 꾸려나갔다. 그리고 드디어 지난 6개월의 백수생활에서 백수로 즐겁게 살 수 있는 방법, 백수이지만 건강히 살 수 있는 방법, 백수이기에 성장하는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 이것을 나는 “찬란한 백수생활 3법칙”이라 칭한다. 모두의 인생은 찬란하고, 백수인 지금도 찬란해야 하니까. 비록 내가 백수(白手)로 손에 가진 것이 없더라도 말이다.
※찬란한 백수생활 3법칙
법칙 1. 건강한 백수생활을 위해서는 백수 진입 후 무조건 3개월 내 정리하라.
법칙 2. 충실한 백수생활을 위해서는 콘텐츠가 있는 백수생활을 만들어라.
법칙 3. 즐거운 백수생활을 위해서는 하나의 커뮤니티라도 활동해라.
앞으로 나는 “찬란한 백수생활 법칙”에 대해 하나씩 설명하려 한다. 드라마에서 묘사하듯 늘어난 파란 추리닝(운동복)에 무기력한 백수는 가라. 찬란한 백수가 나가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