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수 씨, 우리 데이트 100번만 합시다

안녕, 나의 창수 씨

by 최선화

백수로 충실하게 살고 있는 어느 날, 언니에게 연락이 왔다.

"나 코로나에 걸렸어. 아빠 모시고 안과 정기검진 가야 하는데, 너 시간 괜찮아?"

물론이지. 나는야, 찬란한 백수가 아닌가.

"언니, 당연히 되지. 내가 모시고 갈게. 걱정하지 마."


검진일이 되었다. 나는 다른 날보다 서둘렀다. 아이들에게 알아서 학교에 가라고 하고, 나는 먼저 집에서 나왔다. 검진 시간이 오전 10시 예약이라고 했다. 집에서 아빠집에 갔다가 아빠를 모시고 병원까지 가려면 넉넉잡아 1시간 30분이면 되겠지만, 아빠는 성격이 급하시다. 차가 막힐 수도 있다. 넉넉잡고 2시간 전에 출발하자.

아니나 다를까, 출발하면서 이제 출발한다고 전화를 하니, 엄마가 그렇지 않아도 아빠가 기다리고 계신다고 했다.


차를 몰고 아빠한테 가니, 차 가지고 가지 말고 지하철 타자고 하셨다. 아빠와 지하철 타는 게 쉽지 않다고 언니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성격이 급해 뛰어다니신다고. 하하하.

그래서 나는 말했다. "아빠, 차 가져왔으니 차 타고 가세요. 지난번 언니 입원했을 때 가봤던 곳이라 주차장도 잘 알고 있어."

아빠는 "지금 이 시간은 차 막혀서 안돼. 지하철 타면 나와서 바로 앞인데 왜 차를 가지고 가냐"며 신발을 신으셨다.

어쩔 수 없이 아빠와 지하철을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아빠는 언니가 말한 대로 거의 뛰어다니셨다. 내가 걸음이 빨라서 다행이라 생각하며, 아빠랑의 거리가 멀어질 때면, "아빠~, 아빠~."라고 불러 다시 거리를 좁혔다.


서둘러 도착해 이른 시간에 검진을 마쳤다. 10시 30분이다. 이제 아빠와 다시 집으로 가는 지하철을 타야 했다.

아빠가 말씀하셨다. "선화야, 우리 점심 먹고 가자."

나는 대답했다. "네, 아빠. 그런데 아빠. 지금 10시 30분인데.. 점심 먹기에는 너무 일러요."

내 대답에는 상관없이 아빠는 이미 식당이며 메뉴를 생각하고 계셨다.

"선화야, 종로 3가에 가면 국**이라고 식당이 있어. 거기 불고기도 있고, 국밥도 있다. 거기로 가자."

내가 말했다. "아빠, 밥을 먹긴 할 건데... 너무 이르다니까요. 아직 식당문 열지도 않았어요. 일단 아빠 집 앞으로 가죠."


지하철을 타고 아빠와 나는 아빠 집 앞으로 갔다. 11시다. 11시면 문 열 식당이 있을 거다. 지도로 식당을 찾아 한 고깃집으로 들어갔다. 아빠는 삼겹살을 시키셨다. 그리고는 정성스럽게 굽기 시작했다. 고기가 구워지고 한 조각씩 입속으로 들어가면서 우리는 "맛있다"라고 연신 얘기했다. 그리고 아빠는 지난 이야기를 하셨다. 내가 어렸을 적 이야기, 아빠가 우리를 어떤 마음으로 키웠는지에 대한 이야기, 우리가 얼마나 가난했는지에 대한 이야기. 그래도 너희가 이렇게 잘 켜서 아빠는 너무 뿌듯하다는 이야기.

그리고 나서 이 말씀을 붙이셨다.


"오늘 너와 이렇게 점심을 먹어서, 이게 또 나에게는 추억이 될 것 같아. 내가 나중에 저 세상으로 가더라도, 나는 오늘 추억이 있어서 너무 좋을 것 같아."


갑자기 목이 메어왔다. 아빠와 단 둘이 식사를 한 게 언제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어린이에서 청소년이 되어 가족보다는 친구를 좋아하는 시절을 지나면서, 아빠와 단 둘이 보내는 시간은 없어졌다. 졸업식이나 입학식 같은 특별한 날에 아빠가 오셨고, 그때는 엄마나 언니, 혹은 동생 등 다른 가족들도 함께였다. 취직을 하고 일에 몰두하고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또 내 아이를 낳고. 그 길고 긴 시간 동안 아빠와 단 둘이 함께 무언가를 했던 것은 기억나지 않는다.


물을 마시며 메인 목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나는 결심했다. 창수 씨와 데이트 100번쯤은 해야겠다고. 백수로서 나에게 주어진 많은 시간, 창수 씨와 데이트하겠다고. 그리고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창수 씨, 우리 데이트 100번만 합시다."


어릴 적 아빠와 함께 한 추억 한 장면

창수 씨는 늘 나의 지지자였다. 나만의 생각일지는 모르겠지만 아빠는 언니와 동생 중에 나를 제일 예뻐하셨다. 먹어도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 체질의 나를, 어린 시절부터 늘 걱정하셨다. 내 장기기억 저장소에 있는 장면 중 하나가 있다. 몸이 너무 허약해 저녁식사를 하지 않고 자게 되면 그다음 날 일어나지 못할 정도였다. 초저녁 잠이 들었는데, 깨워도 일어나지 않았나 보다. 새벽, 잠은 많이 잤지만, 기력이 없어 눈만 껌뻑껌뻑이고 있었다. 빈 속은 너무 매스꺼웠다. 혼자서 일어날 수 없을 정도로 축 쳐져 있었다. 아빠는 어린 나를 등에 업었다. 그리고는 골목길을 걸어 집 앞 개천가로 가셨다. 새벽 개천 물은 맑았다. 아빠 등에 업힌 나는 힘은 없었지만 넓은 아빠의 등에서 편안함을 맛보았다. 돌아오는 길에 아빠는 가게에 들러 보름달 빵을 사셨다. 속이 메스꺼워 뭘 못 먹는 나에게 부드러운 보름달 빵을 조금씩 떼어내 내 입속으로 넣어주셨다. 아빠가 새벽에 나를 업고 개천가에 나가고 평소에는 맛볼 수 없는 보름달빵을 먹을 수 있었던 그때, 가끔은 나는 저녁을 안 먹고 자는 것을 선택했던 것 같다. 비록 새벽 빈 속의 매스꺼움의 고통이 나를 괴롭혔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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