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수 씨가 삐쳤다

안녕, 나의 창수 씨

by 최선화

창수 씨가 토라졌다.

이게 다 '책'때문이다.


친가(친정) 내 방 책장은 결혼 전과 다르지 않다. 결혼한 지 15년이 지났는데도 말이다. 20년 전, 부모님은 새 아파트로 이사 가면서 내 방 한쪽 벽을 책장으로 세팅해 주셨다. 당시 나는 정치학 석사과정생이었다. 지금이야 전자책과 전자도서관이 워낙 잘되어 있어 자료를 온라인으로 많이 이용하지만, 당시에는 자료 대부분이 책이나 논문이었고, 국회도서관이나 학교 도서관에서 논문 복사 서비스를 이용하고, 자료 찾는 데에도 발품을 팔아야 했던 때였다. 대학원에 다니면서 책을 많이도 샀고, 논문 등의 자료도 많이 복사해 보았었다. 그러다 보니 책장은 책과 자료들로 가득 채워졌다.


백수가 된 후 집을 치우며 거실 책장에 눈이 갔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보던 책, 너무 오래되어 낡은 책, 충분히 보았다고 생각한 책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것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중고서점에 팔 수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고, 못 파는 것은 나눔을 하거나 분리수거날에 버렸다. 며칠을 여기에 시간을 썼다.


그러다 문득 친가 내 방 책장이 생각났다. 먼지 가득한, 누렇게 색이 바랜 책들, 결혼 후 몇 권을 제외하고는 꺼내보지 않은 책들... 그것들은 내가 아니면 치울 수 없는 것이었다. 친가 책장 정리를 결심했다. '이렇게 여유가 있을 때 해야지 갑자기 일이라도 하게 되면 언제 치우나'라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급해졌다. 바로 엄마에게 전화해서 책을 정리하겠다고 얘기했다. 엄마는 반가워하셨다.

"정리해 주면 엄마는 너무 좋지~~~~"


다음날 오전에 아이들을 학교에 보낸 후 바로 친가에 갔다.

엄마는 약속이 있어 나갈 준비를 하고 계셨고, 아빠 창수 씨는 운동삼아 산책하러 가 집에 안 계셨다. 오랫동안 손대지 않아 먼지가 많이 쌓여있을 테니 부모님이 집에 안 계시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방에 들어가 책 정리를 했다. 옛날 책들이어서인지 서지정보가 담긴 바코드가 없는 책들이 많이 있었다. 십여 권을 제외하고 다 버릴 것들이었다. 거의 정리가 끝날 무렵, 창수 씨가 들어왔다.

"딸~왔어??"

"아빠, 나 지금 책 정리하고 있어요."

"책을 왜 다 빼~? 그냥 둬."

"이 책들 너무 오래되어서 이제 보지도 않고, 요즘은 이렇게 공부 안 해. 인터넷으로 논문이나 자료 찾아서 공부하지. 이 책들 다 버려야 해. 낡다 못해 삭았어."

"그래도 다시 다 껴놔. 책장이 비잖아. "

"아빠, 요즘은 책장에 책을 다 껴 놓지도 않아. 중간중간 액자도 넣어두고, 화분도 넣어두면서 여백을 둬야지."

"책을 왜 버려.... 버리지 마"

창수 씨의 말을 무시하고 나는 정리하던 것을 마저 하기 시작했다. 꺼내서 분류하고 나니 버릴 책들이 방 한가운데 첩첩이 쌓였다.


창수 씨는 이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소파에 앉아 앞만 보고 계셨다. 삐친 것이다. 아빠말을 듣지 않는 마흔여덟 살의 딸내미 때문에...

방에서 나와 아빠 옆에 앉았는데도 창수 씨는 계속 그렇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나는 다시 얘기했다.

"아빠, 저 책을 다 버려도 되는 거야. 요즘 보지 않는 책들이고, 다 오래돼서 낡고 해졌어. 유용하지도 않아. 논문 쓴 지 20년이 되어가는데... 자료들 거의 다 오래돼서 쓸모가 없어."

창수 씨는 책을 버린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아 말없이 계속 앞만 바라보고 있다.

나는 지원군이 필요했다.

엄마에게 전화해 언제 올지 물으며 아빠가 삐쳤다고 엄마에게 일렀다.

엄마는 "그냥 둬~!"라고 했다. 그러면서 덧 붙였다.

"그 책들 뭐 하려고 거기다 쟁여둬. 버지리. 나이 들면 버리고 정리하고 해야 하는데... 자꾸 쟁여놔. 아빤 그냥 내버려 둬"

역시, 갑 오브 갑이다.


창수 씨에게는 책을 버린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에게 책은 귀하고 귀한 것이다. 너무 가난했던 그는 배우고 싶어도 못 배우고, 책을 갖고 싶어도 못 가졌던 시절을 보냈다. 그렇기에 그에게는 책 자체가 귀하고 의미 있는 것이다. 그의 삶을 알고 있는 나는 그를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나는 친가에 있는 내 책들을 정리했다는 홀가분함이 더 컸다. 비록 내가 나간 후 몇 번을 방에서 책들을 뒤적이며 아쉬워할 창수 씨의 모습이 그려져 마음 한편이 아리긴했지만....

이번의 만남을 창수 씨와의 두 번째 데이트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일상에서 아빠와 함께 하는 시간은 데이트 그 자체가 아닌가. 나는 이 시간을 애정한다.



어릴 적 아빠와 함께 한 추억 한 장면


내가 어릴 적, 창수 씨는 자전거에 접착제(테이프, 본드 등)를 싣고 문구점, 철물점을 방문해 물건을 파는 일을 하셨다. 하루종일 무거운 짐이 실린 자전거의 페달을 밟으며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빨리 집에 가서 정리하고 신문을 보고 책을 읽으며 쉬어야지..'라고 생각했을까.


창수 씨는 일을 마치고 집에 오면 씻은 후 늘 책이나 신문을 보았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때부터 대학생 때까지 살던 집은 마당이 있었고 방으로 들어가기 전에 소위 툇마루가 타일로 꽤 넓게 펼쳐져 있는 집이었다. 집은 남향이라 햇살이 가득했다. 아빠는 일을 마치고는 그곳에서 늘 신문을 넓게 펼치고 읽으셨다. 당시 신문은 한글과 한자를 혼용해 써서 어린이가 읽기에는 어려웠다. 나는 아빠가 신문을 보면 옆에 앉아 신문을 읽으려고 애썼다. 모르는 자가 나오면 나는 아빠한테 "아빠, 이건 무슨 자야?" "응, '흥'이라고 읽어" 대답이 끝나지도 않아 '아빠, 이건 무슨 자야?" "응, 이건 '건'자야."

묻고 답하는 반복되는 시간들... 나는 지금 그 시간들이 그립다.

내 기억에 창수 씨는 계속 무언가를 읽었다. 그리고 지금도 읽는다. 그때 그 시절, 신문과 책을 읽었듯, 지금도 매일 신문과 책을 읽는다. 그는 지금도 끊임없이 책을, 책 읽기를 갈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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