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이야기는 힘이 세다

일상성찰

by 최선화

내 기억에 존재하는 최초의 이야기는 ‘달에 사는 토끼’ 이야기이다. 선희 언니네 집 대문 옆 문간방에 세 들어 살던 때이니, 내가 여섯 살 혹은 일곱 살 때 나는 그 이야기를 아빠에게 들었다. 그날 나는 이가 많이 흔들렸다. 아빠가 일하고 들어와 온 가족이 저녁을 먹은 후 쉬고 있을 때, 아빠는 나에게 이를 뽑자고 했다. 어린 나는 무서웠다. 그렇지 않아도 울보인데, 곧 이를 뽑을 거라는 상황에 나는 아빠의 말만으로 울기 시작했다. 울든 말든 아빠는 전혀 개의치 않고 내 이에 하얀 명주실을 묶었다.


언제 아빠가 실을 당길지 모르는 불안의 시간이 내 앞에 놓여 있었다. 밖은 어두웠다. 단 한 칸인 집, 방문을 열면 온 집이 열리는 그곳에서 아빠는 방문을 열었다. 그리고서는 울고 있는 나에게 하늘에 떠 있는 달을 보라고 했다. 아빠는 달 속에 토끼가 있다고 했다. 토끼가 절구를 찧고 있으니 한번 찾아보라고 했다. 나는 울면서 달을 바라보았다. 절구는 어디 있으며, 토끼는 어디에 있는지 도통 보이지 않았다. 나는 달에 집중했고 내 울음은 사그라져 갔다. 하얀 달 속에 어디에 토끼가 있는 것일까? 토끼가 절구를 찧으려면 절구통도 있어야 하는데, 절구통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저기 저 얼룩진 그 부분이 토끼일까? 숨은 그림 찾기가 따로 없었다. 까만 하늘에 떠있는 하얀 달 속에서 나는 얼룩진 회색빛 부분을 보며 아마도 저 부분은 절구통이고 그 옆에는 절구를 들고 있는 토끼 모습일 것이라고 끼어 맞추고 있었다. 그때, 아빠는 명주실을 당겨 내 이를 뽑았다. 토끼 찾느라 나는 이 빠지는 줄도 몰랐다. 두려움과 아픔은 어디로 사라지고 앞니 빠진 중강새가 된 나는 그 공포의 시간이 쉬이 가버린 것에 마냥 신나 환하게 웃었다.


나는 아빠에게 ‘토끼가 저건가?’라고 물었고, 아빠는 ‘저기 있잖아.’라고 했다. 저기가 어디인지 나는 잘 몰랐던 것 같다. 아빠가 있다고 하니 있는 줄 알았던, 아빠의 이야기는 모두 진실이라고 믿었던 그때 그 시절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며 나는 달에 토끼는커녕 풀 한 조각 자라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반백년 동안 수없이 많은 이야기를 보고 듣고 읽어왔다. 내 눈과 귀를 거친 이야기에 나는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가슴 벅차기도 했으며, 어떤 이야기는 타인에게 전하기도, 추천하기도 했다. 무수한 이야기 속에서 내 머리에 떠오르는 ‘이야기’는 그때 나의 공포를 사그라지게 한, 무서움을 잊어버리게 한 ‘달에 사는 토끼’ 이야기다. 아마도 불안과 고통을 앞두고 있을 때, 그 이야기로 내 불안을 잠재우고 고통의 두려움을 분산시켰기 때문이 아닐까. 이야기가 매력적인 효험을 가지고 있었다는 걸 그때 이미 나는 터득했었나 보다. 이야기가 가진 힘의 크기가 무한하다는 것을 나는 살면서 더욱더 차곡차곡 쌓고 알아갔다.


그런데 아빠가 말했던 토끼는 1969년에 달에 간 닐 암스트롱일까? 혹시 모른다. 우주선에 닐 암스트롱을 따라 토끼 한 마리가 몰래 타고 있었을지도. 어쩌면 지금까지도 이 뽑는 걸 두려워하는 아이들의 두려움을 사그러지게 하기 위해 5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 토끼가 계속 방아를 찧고 있을지도.

keyword
작가의 이전글결국, 내 바람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