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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내 바람이었어

안녕, 나의 창수 씨

by 최선화


몇 년 전부터 나는 아빠 생신을 앞두고 아빠의 생신 선물로 뭐가 좋을지 오랜 시간 고민한다. 이전에는 나도 보통의 이들처럼 용돈이나 건강식품, 운동화나 옷을 생신 선물로 준비해 드렸었다. 그러나 아빠에게 돈(용돈)은 받으면 좋지만 안 받아도 상관없는 것이었고, 건강식품은 늘 아빠의 집 어디엔가 쌓여있었다. 내 생각으로는 더 이상 이것들을 선물로 드리는 것이 별 의미가 없어 보였다. 운동화나 옷을 사드리면서 나는 아빠가 이것들을 바로 신고 입기를 바랐지만, 신발장과 옷장에 들어간 운동화와 옷은 좀처럼 밖으로 나오지 않아, 이것들 또한 그를 위한 선물 목록에서 삭제했다.


아빠가 늘 받아 왔던 그렇고 그런 선물 말고, 받으면 기분 좋을 특별한 선물이 뭐가 있을까 나는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그러면서 찾아낸 생신 선물 선택의 기준은 ‘살면서 내가 이거 하나는 해봐야지~!’라는 문장 속에서 발견하는 것이었다. 드라마 속 아버지(양관식)처럼 가족이 너무 소중하고 귀해서 하고 싶은 것을 못하고 살았던 아빠에게 작은 선물 하나가 새로운 취미나 도전을 이끄는 시작점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들었던 거다.


그래서 나는 4년 전 처음으로 아빠와 어울리지 않을 듯하지만, 아빠가 처음 해볼 만한 선물을 골랐다. 바로 커피드립용품 세트였다. 원두와 그라인더, 필터와 드리퍼, 드립서버가 세트로 있는 제품을 골라 아빠에게 생신 선물로 드렸다. 아빠는 신기해했고 기뻐했다. 어떻게 사용하는 것인지를 하나하나 가르쳐드렸다. 커피 마시기를 좋아하는 아빠가 아침에 일어나 원두를 갈고 커피를 내릴 것을 생각하니 나도 정말 기뻤다.


다음 해에 나는 아빠에게 서예용품 세트를 사드렸다. 붓 여러 개와 벼루, 연적과 먹이 담겨있는 이 제품은, 보기만 해도 아빠가 여유를 부리며 새로운 취미생활을 할 수 있게 만드는 특별한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이 선물을 결재하면서 나는 아빠가 거실 한가운데에서 화선지를 펼치고 붓을 휘두를 모습을 그리며 흡족해했다.


그다음 해에 나는 아빠 이름을 새겨 만년필을 선물했다. 내가 평소에 정말 갖고 싶었던 만년필을 내가 아닌 아빠에게 선물하며, 나는 아빠가 자신이 지나온 두터운 시간들을, 그리고 앞으로 지낼 얇을 시간들을 종이에 한 자 한 자 적기를 바랐다.




아빠는 오랫동안 공사현장에서 철근 일을 하셨다. 철근과 철근을 잇는 일이 아빠의 주된 업무였다. ‘깔꾸리’라고 불리는 철근결속기를 한 손에 들고 자리를 옮겨가며, 두꺼운 철근의 교차지점을 얇은 철로 결속하는 일을 하루 종일 하셨다. 이렇게 하루 종일 깔꾸리를 돌리는 일을 하루하루 더하고 더해 일만 오천 일이 넘는 날을 하셨다. 단순한 일을 반복하다 보니 아빠의 팔에 근육이 생겼다. 근육만 키웠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돌리며 힘을 주는 손가락이 무감각해지고, 힘을 못 쓰게 된 것이다. 아빠의 오른손이 삐걱거렸다. 어느 순간부터 아빠는 자주 들던 볼펜도 잡지 않으셨다. 신문 위에 끄적거렸던 아빠의 글씨를 어느 순간부터 볼 수 없었다.


아빠는 젓가락질도 어려워하셨다. 처음에는 젓가락이 무거워 나무젓가락을 쓰시다가, 이제는 아예 못하게 되었다. 식구가 함께하는 밥상 위에는 포크가 있던 손주들이 자리엔 젓가락이 놓여있고, 젓가락이 있던 아빠 자리엔 포크가 놓여있다. 밥상을 앞에 두고 아빠의 손을 바라본다. 두툼한 손가락에, 거뭇한 손톱에, 관식이처럼 꺾인 손가락이 보인다. 그의 손에서 고된 삶이 보인다.


나는 아빠가 나에게서 받은 그 선물들을 집 한편에 곱게 놓아둔 것을 본다. 그는 딸이 준 선물을 받고 꿈꿨을 것이다. 그의 손에 붓을 들고 좋은 글귀를 하얀 화선지에 쓰는 꿈, 그의 손에 만년필을 들고 자신의 시간들을 공책에 담아내는 꿈. 현실은 그의 거친, 힘없는 손이다. 붓과 만년필을 쓸 수 없는 손이다.


나는 결국 알아버렸다. 내가 그를 위해 준비한 선물은 그가 꿈꾸길 바랐던 내 꿈이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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