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성찰
1988년 나는 중학생이 되었다. 여자 중학교였던 우리 학교는 매월 첫 번째 월요일에 전교생이 치마를 입는 출처 없고 근거 없는 원칙이 있었다. 3월은 입학식이 있었고, 정신없이 지나가는 기간이어선지 치마등교일은 없었다. 4월 첫 월요일 드디어 치마를 입고 등교하는 날이 되었다. 주말 동안 아무 생각 없던 나는 당일 아침에야 비로소 치마 입는 날이라는 걸 떠올렸다. 옷장을 뒤지고 서랍을 뒤엎었는데도 치마는 나오지 않았다. 달랑 있는 건 언니의 얇은 청치마 하나. 학교에 치마 입고 가야 하는데, 치마가 없다고 나는 울기 시작했다. 부엌에 있던 엄마는 서둘러 방으로 왔고 울고 있는 나를 달래며 옷장을 뒤지기 시작했다. 엄마가 뒤진다고 없는 치마가 나올 리가 없었다. 아마 나는 그날 아침 엄마에게 어떻게 치마 한 장 없냐고, 옷을 왜 안 사주냐고, 그동안 나는 언니 옷만 물려 입었다고, 치마가 없는데 학교에는 어떻게 가냐고... 엄마의 마음을 콕콕 찌르는 말만 골라서 했었던 것 같다. 그날 엄마는 내 등 뒤에서 옷장을 뒤지면서 콕콕 찌르는 딸의 말에 마음이 아프셨는지 눈에 눈물이 맺었다.
그날 나는 결국 계절에 맞지 않는 치마를 입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등교했다. 학교에 가보니 치마를 안 입고 온 아이들도 많았다. 굳이 없는 치마를 엄마 속 긁어가며 눈에 눈물을 빼내며 입고 갈 필요는 하나도 없던 거였다.
다음 날, 엄마는 나에게 퇴근 시간에 맞춰 공장 앞으로 나오라고 했다. 엄마는 그날 저녁 나의 손을 꼭 붙들고 동네 시장으로 향했고, 빼짝 마르고 크지 않았던 나에게 부르뎅아동복 택이 붙은 마이와 체크치마 세트를 사주셨다. 한동안 나는 그 마이와 치마를 정말 소중히 열심히 입고 다녔다. 어떻게 얻은 옷이었는지 스스로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치마 입고 등교하는 날 아침의 일을 크면서 가끔 생각했다. 내 기억 속에 있는, 자식으로서 엄마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날, 엄마를 울렸던 철없던 나를 응시하며, 그날 엄마의 눈에 맺었던 눈물을 마주하곤 한다. 그때 엄마는 무슨 생각을 하며 눈물을 흘렸을까. 아마 엄마는 사는 게 참으로 녹녹지 않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아침부터 저녁까지 공장에서 하루 종일 일하고, 퇴근하면 밥하고 설거지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며 끝이 없어 보이는 집안일에 지쳐 있는데, 여기에 딸 옷 하나 못 사주는 처지인 자신이 너무 작고 한심하고 하찮게 느껴진 것은 아니었을까. 자식이 원수라고, 옷 투정하는 딸이 원망스럽거나 밉지는 않았을까.
엄마가 그날 일을 기억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엄마는 잊었을 수 있을 그날의 일이, 나는 잊히지 않는다. 내가 잊을 수 없는 건 소중한 사람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었다는 생각에, 어렸기에 했던 철없던 행동이 자식인 나에게도 상처였기 때문임을 발견한다.
자식에게 받은 생채기는 자연 치유될까, 아니면 꺼내서 소독도 하고 연고도 바르며 정성을 들여야 치유될까. 잘 모르겠다. 무수히 많은 부모들이 자식으로부터 받은 생채기를 잊은 듯 뒤로 하고 자식이 잘되기를 소망하며 마음을 다 하는 걸 보면, 자식의 존재 자체가 상처의 원인이기도 하지만, 특효약이자 치료백신이기도 하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