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세대(The Next Generation)
달라지지 않으면 안 되는 기업의 의사소통 방식
젊은 리더들을 중심으로 조금씩 나아지고 있긴 하지만 우리나라 기업의 의사소통의 특징 중 하나는 고맥락(high context)으로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고맥락이란 핵심만 언급할 테니 나머지는 듣는 사람이 알아서 해석하라는 것이다. 마치 붓질 몇 번 만으로 훌륭한 작품이 만들어지는 동양화처럼 말이다. 동양화의 매력은 여백이다. 화선지를 빈틈없이 꽉 채우면 동양화는 매력을 잃고 만다. 보는 사람은 스스로 여백의 의미를 이해해야 한다. 그런 것처럼 리더들의 업무 지시사항도 고맥락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요즘 회사 분위기가 안 좋은 거 같아. 왜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나가? 한 번 알아봐’라고 하면 알아서 현상이며 원인을 분석하고 대책까지 마련해 가야 했다. 그래서 리더가 말을 ‘개떡같이’ 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눈치 빠른 사람이 일 잘하는 사람이었다. 리더의 입장에서는 무엇을 어떻게 하라고 미주알고주알 알려주지 않아도 되었다. 업무를 지시받는 사람이 알아서 해석하고 거기에 맞춰서 보고서를 준비해 왔으니 말이다. 그래서 심지어는 자신도 잘 모르는 내용을 윗사람으로부터 듣고 그대로 전달하는 경우도 많았다. 나이 든 사람 중에는 여전히 이런 식의 소통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자신이 그렇게 해 왔으니, 보고 배운 게 그런 것이니 쉽사리 달라질 수 없기 때문이다.
미래세대에게는 이런 식의 소통은 잘 통하지 않는다. 그들은 단순하고 직설적이다. 하고 싶은 말을 빙빙 돌려 해본 적이 없다. 고맥락의 의사소통에서 익숙하지 않다. 그래서 돌려 말하거나 대충 이야기를 하면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을 가능성이 높다. 무엇을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가 분명하고 명확하게 전달되어야 한다. 과거처럼 ‘알아서 해오겠지’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만일 과거처럼 리더가 ‘대충’ 업무를 지시한다면 젊은 사원들은 리더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낼지도 모른다. 앞서 말한 것처럼 젊은 세대는 수시로 녹취를 한다. 자칫하면 ‘지난번에 팀장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잖아요’ 하면서 증거를 들이 밀수도 있다.
그렇다면 리더가 바뀌지 않으면 안 되는데 가장 좋은 것은 업무를 지시하기 전에 리더 스스로 그 업무에 대한 결과물을 머릿속으로 그려보고 어떻게 접근하여 답을 찾을지 고민해 보는 것이다. 자기 스스로도 어떻게 일을 해야 할지 모르는 채 무조건 불러 놓고 일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업무의 방향성을 정해 놓고 전략을 세운 후 업무지시를 내리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만일 그렇지 못한 채 과거처럼 일을 하다가는 단번에 핵심을 찌르고 들어오는 젊은 사람에게 허를 찔릴 수도 있다. 과거처럼 마음에 안 든다고 해서 ‘찍거나’ 내칠 수도 없다. 그랬다가는 오히려 리더 자신이 피해를 볼 수도 있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는 리더 스스로 부단한 노력을 해야 한다. 자기가 업무내용을 파악하지 못하고서는 업무지시를 내릴 수 없으므로 먼저 내용을 파악하고 궁금해할 만한 사항에 대해 대답해 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만일 미처 예상하지 못한 질문을 받을 경우 솔직히 털어놓아야 한다. 모르는 걸 아는 척하다가는 오히려 신뢰만 잃을 수 있다. 미래세대를 납득시키지 못하면 그들에게 일을 시키기도 힘들어질 수 있다.
업무지시를 하거나 업무 결과에 대한 피드백을 할 때도 리더는 소통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핵심 위주로 짧고 간결하게 할 말만 하는 것이다. 업무와 상관없는 이야기를 늘어놓거나 말을 빙빙 돌려가며 알아듣기 힘들게 말을 해서는 안 된다. 왜 그 일을 해야 하는지, 왜 그 사람이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야 하는지, 요구수준은 어떤지, 기대 사항은 무엇인지 등을 명확히 알려주되 장황스러워서는 안 된다. 장황스럽게 이야기를 해봐야 젊은 세대에게는 잘 전달되지 않는다. 오히려 의사소통에 혼선을 가져올 가능성만 높아진다.
일의 결과에 대해 피드백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특히나 잘못된 것을 지적할 때는 더욱 조심해야 한다. 예전부터 ‘사람’이 아닌 ‘일’을 중심으로 ‘스스로 결과에 대해 깨달을 수 있게’ 피드백 하라는 원칙이 있지만 여전히 이런 원칙은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젊은 세대에 대한 피드백은 가급적 이러한 원칙을 지키려고 노력해야 한다. 과거의 세대는 상사로부터 싫은 소리를 들어도 동료라고 여기고 술 한 잔 마시며 불쾌감을 풀어버렸다. 하지만 젊은 세대는 그런 개념이 희박하기 때문에 싫은 소리를 하는 상사에게는 벽을 칠 수밖에 없다. 벽이 있는 상사를 진심으로 존경하고 따르려고 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므로 팀원들과 벽을 없애고 싶거든 리더 스스로도 그런 노력을 해야만 한다.
리더의 입장에서는 일의 결과물을 관리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사람 관리이다. 비록 미래세대를 이해하기 힘들다고 해도 그들 역시 리더의 입장에서는 껴안고 가야 할 자원 중 하나다. 그들은 직설적이고 당돌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경험이 없어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고 솔직한 대화를 나눌 줄도 모른다. 대면 소통에 미숙한 세대가 어렵지 않게 자기 속마음을 꺼내 놓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그들을 이해해 주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그들의 말 하는 방식이 잘못되었다고 여길 경우 그것이 왜 문제가 될 수 있는지를 분명한 이유를 들어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해 주고 어떻게 바꿔달라고 요구해야 한다. 무조건 야단치거나 강요하면 오히려 그들로부터 반발을 살 수도 있다.
직장 내에서의 소통 형태도 달라져야 한다. 여전히 우리나라 기업의 문제점 중 하나는 회의다. 회의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2018년 4월에 조사된 한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직장인들은 하루에 평균 1.4회의 회의에 참석하며 회당 소요시간은 30분~1시간 정도라고 한다. 대개는 같은 부서 직원들과 하는 회의인데 회의 참석자 중 57.6%는 회의 내용에 만족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상사가 하는 이야기를 수동적으로 듣고 있어야 해서’라는 것으로 무려 52.7%를 차지한다. 회의에 참석하는 사람 중 반은 ‘저 인간 또 혼자만 떠들고 있네’라며 질색을 하는 것이다. 회의 시간을 마치 ‘교장님 훈화 시간’처럼 여기는 것이다. 이런 회의가 효율이 있을 리 없다. 이어 41.5%는 ‘결과 없이 흐지부지 끝나서’, 28.9%는 ‘회의의 진행과 구성이 비효율적이어서’라고 말했다.
이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41.6%가 상급자의 의견 위주로 회의가 권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답했으며 20%는 결론 없는 오리무중 회의라고 답했다.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직급에 상관없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자유롭게 나눌 수 있는 회의는 26.0%에 불과했고 사전에 회의의 주제와 목적을 공유해 쓸 데 없이 시간을 질질 끌지 않고 속전속결하는 회의도 34.2%에 불과했다. 여전히 회의를 긍정적으로 보는 면보다는 부정적으로 보는 측면이 더 많이 남아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가 어제오늘 드러나는 것도 아니고 내가 직장 생활을 하던 시절부터 나오던 이야기였음에도 아직도 거론되고 있는 걸 보면 얼마나 기업이 달라지지 않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내가 직장 생활을 하던 시절의 젊은 사람과 지금의 젊은 사람은 완전히 다른 인류라고까지 할 수 있을 정도인데 기업의 시스템은 바뀌지 않고 젊은 사람들에게 ‘네가 선택한 회사니까 회사의 시스템을 따르라’고 하는 것은 시대의 흐름을 역행하는 것이나 크게 다를 바 없다. 한편으로 보면 젊은 사람들의 주장이 옳을 수도 있다. 우리나라 기업의 회의 문화는 여전히 권위적이다. 쓸 데 없이 길게 늘어지기도 하고 왜 회의를 하는지 모르는 회의도 많다. 그런 회의는 젊은 사람들로 하여금 회의(會議)에 회의(懷疑)를 갖도록 만들고 직장에 재미를 느끼지 못하도록 만든다. 마음이 떠나도록 만드는 것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소통의 잘못으로 인해 아까운 인재를 잃을 수도 있다.
우리나라 기업은 여전히 위계질서를 내세우는 조직이지만 미래세대는 그러한 위계질서를 받아들이는 것도 힘들어한다. 그들은 직장에서의 모든 관계는 평등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과장이나 차장, 부장과 같은 직위나 팀장과 같은 직급을 무시한다는 것이 아니다. 그들도 직위나 직급이 높은 사람이 자신보다 위에 있고 존경해야 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다만 그들은 ‘인권’이라는 측면에서는 과장이나 차장, 부장이 자신보다 위에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권이란 누구에게나 동등하고 그래서 지위나 직급이 높은 사람이라고 해서 아랫사람에게 함부로 대할 수 없다고 여긴다.
그러니 첫 만남부터 말을 놓거나 아랫사람이라고 해서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거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는 말을 하면 참기 어려워한다. 출근 첫날 30분 만에 집으로 돌아간 사람의 경우 어쩌면 이런 측면에서 쇼크를 받았을 수도 있다. 자기 딴에는 성인으로써 대접받을 것이라 여겼는데 막상 출근 첫날 ‘이름이 뭐야?’, ‘여태 뭐하고 이제 입사했어?’, ‘학교 다닐 때 공부 잘했어?’ 식으로 군대처럼 대한다면 직장 생활에 대한 기대는 깨지고 회의감이 몰려올 수도 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다는 말처럼 앞으로 고생 꾀나 할 것 같으니 그대로 그만둔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도 이런 기업은 꽤 많다. 기존 직원들의 입장에서는 친근감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겠지만 그건 젊은 세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하는 행동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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