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극적인 인지 전환으로 조바심 억누르기
2단계: 적극적인 인지 전환을 통해 조바심을 억누른다
1단계에서 자신이 조바심을 내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면 의식은 순간적으로 변연계를 떠나 전두엽으로 돌아온다. 감정보다는 이성을 통해 자신을 다스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 셈이다. 이때를 놓치지 말고 보다 적극적인 행동을 취해 이성적인 사고가 감정보다 우위에 서도록 만들어야 한다.
2단계에서는 자신이 느낀 초조하고 불안한 감정에 대해 보다 적극적으로 인지 전환을 시도함으로써 조바심을 억누르려고 해야 한다. 인지 전환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인지하고 있는 것을 바꾼다는 의미이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일에 대하여 초조하고 불안해한다는 측면에서 조바심은 일종의 정신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상당수의 정신적인 문제는 믿음의 오류로부터 기인한다. 즉 무언가 시간적 압박을 느끼는 상황에서 느긋하게 여기거나 초조하고 불안하게 여기지 않으면 안 된다는 잘못된 생각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자기 자신에 대한 자책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이미 늦어버린 일에 대해 아무리 초조하고 불안해하며 자책해봐야 소용이 없다. 부정적인 감정은 가만히 놔두면 언덕을 굴러 내려오는 눈덩이처럼 갈수록 크게 불어날 뿐이다. 이를 ‘눈덩이 효과(snowball effect)’라고 한다. 영국의 추리소설 작가인 체스터슨(G.K. Chesterson)은 ‘걱정거리란 어린아이와 같다’고 했다. 관심을 가지고 바라볼수록 쑥쑥 자라는 어린아이처럼 성장하기 때문이다. 조바심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도 마찬가지다. 초조하고 불안해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다.
(1) 조바심이 전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음을 깨닫는다
인지 전환은 다시 세부적인 단계로 나뉜다. 첫 번째는 조바심이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막히는 길에서 거래처와의 중요한 약속시간에 늦을까 봐 발을 동동 구르며 조바심을 내봐야 무슨 소용이 있는가? 그렇게 마음을 졸이는 것이 약속시간에 늦지 않게 하는데 어떠한 도움이라도 줄 수 있을까? 하도 가슴을 졸여 심장만 아플 뿐이다. 대학입시에서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없을 것 같다고 초조하고 불안해해 봐야 소용이 없다. 차라리 그럴 바에는 마음을 느긋하게 먹고 차근차근 모르는 것들을 다져 나가는 것이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책을 빨리 내고 싶다고 발을 동동 구르며 조바심 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조바심을 내면 낼수록 허술한 책이 나올 뿐이다. 그러므로 조바심이 고개를 들 때마다 그러한 감정이 어떠한 문제도 해결해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이는 일종의 마인드 컨트롤이다. 조바심 나는 마음을 털어버리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정상적인 사람들은 80%의 걱정거리를 안고 산다고 한다. 그러나 걱정하는 것의 40%는 절대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으며 30%는 이미 일어난 일에 관한 것이라고 한다. 22%는 사소한 고민이며 4%는 아무리 걱정해봐야 인간의 힘으로 해결 불가능한 것이고 오직 4%만이 노력하면 바꿀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늘 걱정을 몸에 붙은 살처럼 끼고 산다. 그래서 티베트에는 이러한 속담이 있다고 한다.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
티베트 속담처럼 걱정하는 마음은 그 실체를 바라보고 내 마음속에서 그 걱정스러운 마음을 쫓아내야만 한다.
냉전주의 시대 미국과 소련, 그리고 동독 간의 스파이 사건을 다룬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스파이 브리지(Bridge of Spies)>라는 영화에 인상 깊은 장면이 나온다. 영화는 톰 행크스(Tom Hanks)가 연기한 미국의 보험전문 변호사 ‘제임스 도노반’이 마크 라이런스(Mark Rylance)가 연기한 소련의 스파이 ‘루돌프 아벨’을 변호하는 내용이다. 이 영화에서 톰 행크스는 시종일관 열정적인 변호사의 모습을 보여준다. 마크 라이런스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꽤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반면에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위태로운 상황을 앞두고 있는 스파이 마크 라이런스는 자신의 스파이 짓을 부인하거나 살려 달라는 애원 한 번 하지 않고 늘 여유롭고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 상황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톰 행크스가 세 차례에 걸쳐 걱정스럽지 않으냐고 물어본다. 어떻게 그렇게 태연할 수 있느냐는 의문이다. 그때마다 마크 라이런스는 이렇게 대답한다.
‘걱정한다고 달라질 게 있소?’
그 대답을 들을 때마다 오히려 질문을 던진 톰 행크스의 말문이 막힐 뿐이다.
조바심에 대처하는 자세도 이렇게 초연함이 필요하다. 조바심은 기본적으로 걱정스러운 마음이다. 그런데 걱정은 앞서 살펴본 것처럼 대부분 의미 없는 것들 뿐이다. 즉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 일어나지 않을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대부분은 일어나지 않는다. 이미 지나간 일, 일어나지 않을 일,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을 가지고 근심 걱정에 휩싸여 지낼 필요가 없는 것처럼 조바심을 부르는 일에 대해서도 그러한 마음자세가 필요하다. 티베트의 속담을 변형하여 ‘조바심을 내서 조바심이 사라지면 조바심을 낼 필요가 없겠네’라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조바심을 낸다고 해서 일이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그 조바심으로 인해 일이 더디어지고 결과가 허술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면 조바심이라는 것이 결코 유리할 게 없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나는 충동적으로 회사를 그만둔 후 거의 18개월 동안 생계수단을 찾을 수 없었다. 물론 책을 쓰거나 대학에서 강의를 하거나 기고를 해서 푼돈을 쥘 수는 있었지만 대학생 아들과 고등학생 딸을 거느리고 가계를 꾸려 가기에는 턱 없이 부족한 돈이었다. 물론 퇴직금과 저축한 돈 등 당분간 생활할 수 있는 자금은 있었지만 백수생활이 길어지면 견디기 힘들었으므로 하루빨리 생계수단을 찾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하지만 모든 노력들이 쉽지 않았다. 힘들게 쓴 책들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출판이 좌절되었고 믿고 있었던 강의는 의뢰조차 없었다. 창업을 해보려고 시도해 봤지만 나이 든 사람에게 돈을 대주겠다는 마음씨 좋은 혹은 어리숙한 자본가들은 없었다. 마지막 수단으로 재취업을 하려고 해 봤지만 이미 오십을 넘은 사람을 써주겠다는 기업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하루하루가 마치 심연을 걷는 것처럼 힘들었고 빨리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조바심에 시달렸다.
서둘러서 무언가 해결책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는 조바심 때문에 무엇 하나 끈질기게 집중할 수 없었다. 시간이 걸릴만한 일들은 초조한 마음 때문에 할 수 없었다. 무엇이든 빨리 결과를 내고 싶은 마음에 늘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그 때문에 책을 내는 일은 더욱 꼬여만 갔다. 여유 있게 생각하면 더욱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텐데 급한 마음에 서두르다 보니 안 좋은 결과를 얻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거짓말처럼 모든 걱정이 사라졌다. 다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예전 같지는 않았지만 부족하지 않을 만큼의 생활비를 벌 수 있었다. 게다가 시간적으로도 여유가 있었고 무엇보다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조바심을 낸다고 해서 일이 해결되는 것도 아니었건만 괜히 애만 태웠던 것 같다. 물론 그 당시의 상황에서는 누구보다 절박한 심정이었겠지만 그 조바심이 결코 나의 어려운 상황을 벗어나는데 도움이 되지는 못했다. 차라리 18개월 동안 좋은 기회라 여기고 재충전을 위해 여행을 하거나 코칭 자격증이라도 따 두었으면 좋았을 걸 말이다.
조바심은 수많은 문제점을 만들어낼 뿐이다. 지나치게 서두름으로써 실수나 실패를 가져오고 설익은 행동으로 경솔하게 보이거나 더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있다. 그러니 조바심이 날 때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조바심을 내 봐야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그리고 조바심을 내지 않으려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것이다.
막히는 길의 차 안에서 발을 동동 구르기보다는 ‘이런다고 빨리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차라리 음악이나 즐기자’라고 생각해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고 싶어 안절부절못하기보다는 그렇게 조바심을 내다가는 될 일도 안 되고 사랑하는 사람도 잃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친구의 승진에 조바심을 내고 질투를 하기보다는 뒤늦게 피는 꽃이 더 화려할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붙잡고 가슴을 졸이기보다는 차라리 마음 편하게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이 정신건강 측면에서 더 낫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 중 상당수는 이 이야기를 받아들이기 힘들지 모른다. 어떻게 일이 틀어지거나 잘못될 수 있는 상황에서 걱정을 하지 않고 한가하게 받아들일 수 있느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하지만 난 이러한 방법을 통해 조바심을 치료하였고 그 효과는 무척 컸다. 과거 같았으면 책을 쓰는 동안에도 빨리 작업을 끝내고 싶어 초조하고 불안해했겠지만 지금은 서두르지 않고 느긋하게 글 쓰는 것을 즐기고 있다. 내가 서두르면 서두를수록 형편없는 글이 나올 것이고 공을 들이면 들일수록 좋은 책이 나올 것이라 생각하니 오히려 서두르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이제는 전혀 조바심이 나지 않는다. 그렇게 되니 글 쓰는 것도 편하다. 후에 출판사에 투고하고 난 후에도 아마 여유 있는 마음으로 원하는 출판사를 선택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렇다면 왜 많은 사람들이 이를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하는 것일까? 그건 아마도 심리적인 부담감 때문일 것이다. 일종의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라고 할 수 있다. 인지부조화는 개인이 옳다고 여기는 신념과 다른 행동을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담배를 피우는 것이 나쁘다는 것을 알면서도 담배를 피우는 행위가 그러한 것이다.
스탠퍼드 대학 교수였던 미국의 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Leon Festinger)는 인지부조화를 밝혀 내기 위한 한 가지 실험을 계획한다. 실험 참여자를 모집한 후 몇 시간 동안 초보적인 계산 문제를 풀도록 한다. 그리고는 말도 안 되는 설명을 하면서 실험 참여자들을 혼란스럽게 한다. 실험은 참으로 지루한 것이었지만 참여자들은 모두 끝까지 과정을 마쳤다.
실험이 끝나고 페스팅거 교수는 참여자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한 그룹에는 수고비로 1달러를, 다른 한 그룹에는 수고비로 20달러를 지불하였다. 실험이 진행된 시기는 1970년대이므로 20달러라면 꽤 큰돈이다. 그리고 실험이 얼마나 즐거웠으며 얼마나 과학적으로 의미가 있을 것 같은지 질문을 하였다. 그러자 의외로 20달러를 받은 참여자들보다 1달러를 받은 참여자들이 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 실험 결과에 대하여 페스팅거 교수는 1달러라는 적은 보수를 받은 참여자들은 속으로는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는 우스꽝스러운 실험에 참여하고 보수도 제대로 못 받은 자신들을 멍청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자신이 모르는 무언가 중요한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여긴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은 보상을 바라지 않고 실험에 기여한 셈이라고 여긴다는 것이다. 누구든 자기 자신을 멍청하다고 생각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기에 의미 없고 우스꽝스럽다고 여기는 실험이었지만, 참여자들은 자신의 판단을 합리화하기 위해 실험이 의미 있다는 답을 하게 된 것이다.
반면에 20달러를 받은 참여자들은 그러한 압박이 없으므로 자신의 신념대로 자유롭게 답변했다. 이처럼 어떤 상황에서 자신이 믿고 있던 신념과 모순되는 일이 벌어질 때 사람들은 평소 자신의 신념과 반대되는 행동을 선택할 수 있다. 이것이 인지 부조화이다. 아무리 어리석은 일일지라도 그것을 선택하고 난 후에는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고 여기는 것이다.
이런 또 하나의 사례가 레온 페스팅거 교수로 하여금 인지부조화 실험을 하도록 만든 사건이었다. 당시 미국의 한 마을에서 사이비 종교의 교주가 사람들을 현혹하는 일이 있었다. 조만간 큰 홍수가 나 온 세상이 물속에 잠길 텐데 자신을 믿고 따르면 비행접시가 날아와 구조를 할 것이라며 사람들을 끌어들였다. 사이비 교주의 말을 믿은 사람들은 직장을 그만두고 전 재산을 팔아 이 사이비 교주 밑으로 들어가 철야기도를 하며 종말을 기다렸다. 하지만 예정된 날이 되어도 홍수는 나지 않고 날은 청명하기만 하였다. 그러자 교주는 사람들을 모아 놓고 신도들의 열렬한 기도 덕분에 세상이 멸망의 문턱에서 살아남았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신도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누가 봐도 사기임이 분명하였지만 놀랍게도 신도들은 기뻐하며 축제를 벌였고 이후로도 더욱 열심히 종말론을 믿으며 주위 사람들을 끌어들였다고 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이유는 간단하다. 종말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해서 그 교주를 사이비라고 비난하면 자신이 직장도 그만두고 전 재산을 투자하며 믿어왔던 신념이 헌신짝처럼 쓸모없는 것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분명 잘못된 것임을 알면서도 신도들은 자신의 신념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이후로도 더욱 열심히 종교활동에 매진하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조바심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다 안다. 하지만 실제로는 특정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면 조바심을 떨쳐버리지 못한다. 자신의 믿음과는 상반되는 행동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현실적인 갈등이 숨어 있을 것이다. 조바심을 내며 애를 태우는 것이 문제 해결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속 편하게 지내는 것도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만일 조바심이 날 만한 상황에서 속 편하게 지낸다면 주위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감당하기 힘들거나 ‘속 없는 사람’이라는 비난을 감수해야 할지도 모른다. 일이 잘못되는 경우에는 적어도 걱정은 했다는 마음의 위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역설적이게도 조바심을 냄으로 해서 마음의 위로가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길게 보면 조바심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조바심을 내서 문제가 해결되면 얼마든지 조바심을 내도 상관없다. 하지만 조바심에 사로잡히게 되면 오히려 일은 더디어지고 질이 떨어지거나 잘못될 수도 있다. 조바심을 내지 않는 것만 못하다.
그렇다고 서두르지 말라는 말은 아니다. 행동은 서둘러하되 심적인 측면에서는 여유를 찾아야 한다. 그래야만 원하는 대로 일을 풀어 나갈 수 있다. 우리 속담에도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다. 이미 선조들은 급하다고 해서 조바심을 내면 될 일도 안 된다는 것을 꿰뚫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조바심이 나거든 이 말을 명심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