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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은우 Mar 31. 2019

잘려버린 감나무가 인간의 탐욕에 준 교훈

욕심이 스스로를 힘들게 만드는 건 아닐지?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로 이사 온 지가 벌써 10년이 훌쩍 넘었다. 신도시가 건설되면서 심어두었던 조경용 나무들이 근 20년 동안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듯, 처음 이사 올 때만 해도 3층에 위치한 우리 집 베란다 높이까지 자라 있었다. 봄이 되면 목련이며 벚꽃들이 풍성하고 화사하게 꽃을 피워 베란다에 의자를 놓고 앉아 커피 한 잔 마실라 치면 마치 경치 좋은 야외 카페에 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술을 마시지 않아도 꽃에 취해 정신이 몽롱해질 정도였고 한밤중에도 베란다에 불을 켜놓은 듯 주위가 환했다. 그중에는 키 큰 감나무도 있었는데 그 감나무 역시 베란다에서 손을 뻗기만 하면 닿을 듯 가까운 거리까지 키가 자라 있었다. 가을이 되면 그 감나무에서 두 주먹을 합친 것만큼이나 큰 감들이 주렁주렁 매달리곤 했다. 굳이 감을 따지 않아도 탐스럽게 열린 감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풍족해지는 느낌이었다. 오며 가며 주렁주렁 달린 감들을 바라볼 때면 흡족한 미소가 퍼지곤 했다. 그 감나무는 늘 무언가에 쫓기며 정신없이 살아온 삶에서 부족한 마음의 여유를 채워주는 위안 같은 존재였다. 


그렇게 몇 해가 지난 어느 가을날, 베란다 바깥에서 큰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밖을 내다보니 먹음직스럽게 열린 감을 두고 언쟁이 벌어진 듯했다. 누군가가 그 감을 따가려고 했고 관리사무소에서는 그것을 못 따게 말리는 것 같았다. 자세한 정황을 앞 수는 없으나 애초에 감을 따려던 사람이 지나치게 욕심을 부려 통념적으로 허용될 수 있는 수준의 양을 너머 감을 따가려 한 것 같았다. 장비와 바구니까지 동원해서 말이다. 


처음에는 말다툼으로 시작한 분쟁이 시간이 지나면서 격한 싸움으로 치닫았다. 동네 사람과 관리사무소 직원 간의 말다툼으로 시작된 싸움에 자기도 햇빛을 가리는 걸 참으며 지내는데 왜 감을 송두리째 따가려고 하느냐며 2층 입주자가 끼어들었고, 모든 불편을 감수하고 있다며 감나무는 자신의 것이라며 1층 입주자까지 싸움에 끼어들었다. 커져버린 판 때문인지 갈수록 언성이 높아지더니 결국에는 몸싸움으로 까지 번졌다. 한 동안 고함소리며 서로 멱살을 잡고 밀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더니 어떻게 해결이 되었는지 결국 다툼은 끝이 났다. 


그 해 겨울,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흡족한 미소를 머금게 하던 그 감나무는 사정없이 가지가 쳐내지고 말았다. 3층 높이까지 이르던 나무는 1층도 넘기지 못할 높이로 키가 꺾이고 말았고, 파마머리처럼 풍성했던 가지는 숱 빠진 머리처럼 휑하고 흉물스럽게 변하고 말았다. 손발이 잘린 감나무의 모습은 볼품없음을 넘어 황량하게까지 느껴지고 말았다. 게다가 주위에 있던 목련과 벚꽃나무마저 덩달아 피해를 입고 말았다. 바로 손만 뻗으면 닿을 것 같았던 꽃나무 가지들이 한참을 내려봐야만 하는 키 작은 나무들로 바뀌고 말았다. 지난가을의 분쟁으로 인해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전지작업을 해버린 모양이었다. 


흉물스럽게 변해버린 감나무를 보면서 마음이 아팠다. 적어도 20년 이상을 그 자리에서 자랐을 텐데 한 순간에 벌거벗겨지듯 온 몸이 잘려 나가고 말았으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그 모든 것들이 인간의 지나친 탐욕으로 인한 결과라 생각하니 씁쓸하기만 했다. 애초부터 분쟁의 소지를 없애버리겠다는 관리소 직원들의 짧은 생각도 문제지만, 그 분쟁의 책임을 인간의 탐욕에서 찾지 못하고 애꿎은 감나무에게 돌려버린 이기주의에 진저리가 났다. 서로가 조금만 양보하고, 서로가 조금만 투명하게, 서로가 조금만 배려했다면 감나무를 그렇게 무참히 잘라내지 않고도 이성적인 해결책을 찾을 수 있었을 텐데 그런 지혜를 발휘하지 못한 사람들의 어리석음이 한없이 원망스러웠다. 


그때 잘려 나간 감나무는 충격을 받은 듯 이후로 한 동안 심한 몸살을 앓았다. 제 때 잎을 피워내지 못했고 이후로도 성장이 더디었다. 봄이 돌아오면서 어김없이 새 잎이 돋아나긴 했지만 예전처럼 화려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변해버린 감나무의 모습이 너무나 초라해 보여 눈길을 주기조차 싫었다. 눈길이 갈 때마다 마음 한 편이 아려왔기 때문이었다. 더욱 심한 건, 그렇게 보기 좋고 풍성한 열매를 맺던 나무가 몇 년 동안 열매를 맺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마도 자신의 팔다리를 인정사정없이 잘라버린 인간들에게 치 떨리는 배신감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탐욕스러움에 넘치는 인간들에게 아낌없이 베푸는 자신의 마음을 나누어 주기 싫었는지도 모른다. 마치 감나무가 '너희 같이 욕심 많은 인간들은 내 열매를 가질 자격이 없다'라고 절규하는 듯했다. 그렇게 꽤 오랜 시간 감나무는 열매를 맺지 않았다. 


그러던 작년 가을, 감나무 가지 사이로 꼭꼭 숨겨둔 주황색 열매 몇 개가 살짝 스치듯 보였다. 감나무의 앞이나 밑에서는 볼 수 없지만 우리 집 베란다에서 내려다보면 숨겨둔 열매가 슬쩍슬쩍 보이곤 한다. 이상한 것은 감이 겨우 네 개뿐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마음이 없는 생명체이니 단순히 우연의 일치일 뿐일까? 아니면 상처 입은 감나무가 아직도 그 상처로부터 회복되지 않았음을 말해주는 것일까? 여전히 감나무는 인간들의 탐욕에 마음을 내어주고 싶지 않은 것일까? 어쩌면 감나무는 인간들에게 경고를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욕심내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기본적인 사실을 말이다.  


[감나무는 무슨 마음으로 달랑 4개의 감만 품었을까?]


인간의 탐욕은 끝이 없는 듯하다. 서로 조금씩 덜 갖고, 서로 조금씩 나누고, 서로 조금씩 배려하면 그리 힘들게 살지 않아도 될 텐데 서로 더 많이 갖지 못해 안달이다. 9,999를 가진 사람이 1을 가진 사람 것을 빼앗아 10,000을 만들고 싶어한다. 그리고 그 탐욕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물론 스스로도 힘들게 만든다. 최근 우리 사회를 뒤덮고 있는 어지러운 이슈들도 모두 인간의 탐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다. 비록 조금 부족하더라도, 비록 조금 아쉽더라도 욕심을 버리고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한다면 삶이 보다 여유로워질텐데 그것을 하지 못한다. 내가 덜 가지고 다른 사람을 위해 양보했다면 감나무의 가지는 그렇게 흉물스럽게 잘려나가지 않았을 것이고 여전히 우리 곁에서 풍성한 결실을 보여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탐욕으로 인해 모두가 풍성함을 잃어버렸고 마음의 여유조차 상실하고 말았다. 이처럼 어리석은 일이 또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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