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무기, 주제와 콘셉트(2)
주제 선정 방법 2: 자신이 가장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일 중에서 선택하라
가장 좋은 주제는 자신이 가장 오래 해 온 일에서 찾는 것이긴 하지만 책의 주제가 반드시 자신이 해온 일과 관련된 것일 필요는 없다. 업무와 관련 없이 취미로 오랜 기간 동안 재테크를 해서 돈을 많이 벌었거나, 가죽공예나 목공예처럼 무언가 만드는 일을 오래 해 와 그로부터 터득한 노하우가 있다면 그러한 것도 충분히 글쓰기 주제가 될 수 있다.
낯선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나누거나 친구가 되는데 탁월한 재능이 있는 사람들은 관계 맺는 기술에 대한 책을 쓸 수 있고, 좀처럼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사는 사람이라면 스트레스받지 않고 사는 방법에 대해 쓸 수도 있다. 뇌과학 공부를 열심히 해서 지식이 쌓인 사람이라면 뇌과학 관련된 책을 쓸 수도 있고,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여행과 관련된 스킬과 노하우, 정보를 공유하는 책을 쓸 수도 있다.
정리하는 기술, 메모하는 기술, 노트하는 기술, 회의하는 기술, 비난을 무시하는 기술 등 무엇이든 잘할 수 있는 스킬이나 노하우가 있는 것은 책의 주제가 될 수 있다.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이 책도 그동안 책을 쓰면서 얻은 나만의 지식과 노하우, 스킬을 전하기 위한 것이다. 내가 회사를 다니며 했던 일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나는 요리하는 것을 좋아해서 한 때는 열심히 요리 블로그를 운영했다. 그때 알게 된 분 중에 ‘아기 받는 남자’라는 닉네임으로 다음에서 파워블로거로 활동하셨던 분이 있다. 특이한 건 이 분의 본업은 닉네임에서 알 수 있듯 산부인과 의사인데 블로그는 요리를 주제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남자이기 때문에 의사로서의 실력은 알 도리가 없지만 요리 솜씨만큼은 혀를 내두를 만큼 기가 막히다. 물론 먹어본 것은 아니기 때문에 맛까지 알 수는 없지만 완성된 요리는 사진만으로도 저절로 침샘이 돌게 만들 정도이다. 맛은 굳이 먹어보지 않아도 알 것 같다. 궁금한 분들은 한 번 검색해 보시길….
산부인과 의사가 본업인 이분이 요리책을 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게다가 케이블 TV의 요리 프로그램에까지 출연했다고 하면 더더욱 믿겠는가? 믿기도 힘든데 둘 다 대박을 쳤다. 블로그를 떠난 지 너무 오래돼서 최근 소식을 알 수 없기에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분은 요리를 좋아하고 또 요리를 꽤 잘하신다. 그러다 보니 요리책을 내는 것도 이분에게는 그다지 특별한 일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이처럼 자신이 해 온 일과는 상관없이 자신의 개인적인 관심사, 취미, 특기 등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것으로부터 주제를 선택하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 의외로 이러한 것들이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한다. 『지금 중국 주식 천만 원이면 10년 후 강남 아파트를 산다』는 도발적이고 긴 제목을 가진 책을 쓴 정순필 씨는(개인적으로는 전혀 모르는 분이다!) 본업이 엔지니어였다. 중국과 주식투자에 관심이 많아 관련된 공부를 꾸준히 했고, 책을 내면서 그것이 계기가 되어 증권업으로 직무까지 전환했다고 한다.
평범한 사람들이 책을 내고 베스트셀러에 오를 수 있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아무리 평범한 사람이라도 누구나 하나쯤은 잘하는 일이나, 관심 있는 일이나, 자신만의 노하우를 가진 일이 있게 마련이다. 그것이 굳이 거창한 것이나 대단한 것이 아닐지라도 자신 있게 사람들에게 이야기할 수 있는 내용이 있다면 이것도 책을 쓸 수 있는 주제가 될 수 있다.
이렇게 말해도 어떤 사람들은 도무지 잘하는 게 없다고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런 건 어떤가? 자신을 너무 게으르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보자. 스스로 생각하기에는 너무 게으르지만 돌아보면 지금까지 그 게으름 때문에 일을 망친 적도 없고 크게 잘못된 것도 없다. 그렇다면 그 게으름이 인생을 나쁜 쪽으로 꼬이게 만드는 것이라기보다는 인생을 좀 더 여유 있게 즐길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일 수도 있다. 이것을 이용하여 자신이 남들보다 게으름을 피우면서도 할 일 다 하고 성과를 낼 수 있는 비결을 책으로 쓸 수도 있지 않을까? 요즘에는 이런 책들도 잘 먹히니 말이다. 만일 책을 낸다면 제목은 ‘게을러도 괜찮아. 느리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아’가 어떨까?
이처럼 무엇이 됐든 잘하는 것 하나만 있으면 충분히 책으로 쓸 수 있다. 일을 떠나 개인적인 측면에서 잘할 수 있는 것을 아래와 같이 정리해 보자.
• 내가 잘할 수 있거나, 나만의 노하우를 가지고 있거나, 다른 사람에게 자랑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 요리하기
- 글쓰기
- 새로운 것에 관심 가지고 배우기
- 상상하기
- 뇌과학에 대한 지식
- 공감하기
음, 심각하다. 생각 외로 잘하거나 관심 있는 것, 자랑할 만한 것이 별로 없다. 너무 쓸 게 없어 몇 개는 억지로 끼워 넣었다. 아무튼 이렇게 정리해 보면 내가 잘하는 것이나 나만의 노하우를 가진 것으로부터 글감을 찾을 수도 있다. 뇌과학에 관한 지식은 이미 그것을 이용하여 책을 두 권 출판하였고, 요리하기는 요리와 글쓰기를 접목하여 꾸준히 출판을 시도 중이다.
공감하기는 너무 없어 보일까 봐 일부러 끼워 넣은 것인데, 이런 것도 남들보다 뛰어나게 잘한다면 하나의 글 주제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공감을 잘하고, 그것으로 인해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인간관계가 좋다면 그 얘기를 엮어 ‘공감의 기술’이라는 책을 쓸 수도 있겠다.
이것도 한 번 정리를 해보자.
여기에서 드는 의문 한 가지. 꼭 내가 잘하거나 나만의 노하우를 가진 것이어야만 하나? 그냥 관심이 많은 것은 안 될까? 사실 내 경우에는 위에서 본 것처럼 별로 잘하거나 차별화되는 노하우를 가진 것이 별로 없다 보니 글의 주제를 주로 관심사에서 찾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관심사라고 해도 어느 정도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고 나름대로의 노하우가 있는 것이 좋다. 관심은 있지만 잘 모르는 분야라면 책을 쓰기 위해 엄청난 공부가 필요할 것이고, 관심은 있지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면 경험이 필요하다. 관심은 있는데 지식도 없고 경험도 부족하면 억지로 책을 쓴다고 해도 콘텐츠의 수준이 발목을 잡을 수 있다. 이런 책은 쓰지 말아야 한다. 책임질 수 없는 글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가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는 것인지, 관심은 있되 지식이나 경험은 없는 것인지, 관심도 있고 잘 알고 있으며, 실제 노하우도 갖추고 있는지 종합적으로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주제 선정 방법 3: 자신의 강점이나 약점 중에서 선택하라
자신이 가진 강점은 직접적으로 좋은 글감이 될 수 있다. 강점은 자신의 삶에 도움이 되는 것, 예를 들어 어떤 상황에서도 스트레스를 안 받는다거나 회복 탄력성이 뛰어나거나, 무언가 일을 시작하면 끝을 맺는 실행력이 뛰어나다는 것 등을 말한다. 자신이 가진 강점으로 인해 삶의 질이나 만족도가 높아지고 성공 경험까지 보유하고 있다면, 그 노하우를 공유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다.
약점은 자신의 발목을 잡아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것으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그런데 약점은, 과거에는 약점이었지만 그것을 이겨내고 달라진 것이어야 이야깃거리가 될 수 있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약점으로 남아 있어 내 삶을 갉아먹는 것이라면 이야깃거리가 되기 어렵다. 물론 자신의 약점을 뒤집어서 생각하면 강점으로 탈바꿈시킬 수 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피상적인 글이 될 수 있다. 이론적인 얘기로만 끝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과거에는 아침잠이 많아 하루가 짧게만 느껴졌는데 그것을 나만의 방법으로 극복하여 지금은 아침시간을 유용하게 보내고 있고, 그것 때문에 삶에 변화가 생겼다면 그러한 것을 정리해 보는 것도 좋다.
내 글쓰기 강의에 찾아온 강사 한 분은 과거에는 무슨 일이든 실행하면 끝까지 끝내지 못했다고 한다. 책을 읽어도 늘 초반부 몇십 쪽 정도만 읽을 뿐 끝까지 읽은 책은 별로 없었다고 한다. 벌리기는 잘하는데 마무리를 못하는 게 병이라고 했다. 하지만 꾸준한 노력을 거듭한 끝에 지금은 무슨 일이든 끝까지 실행하고 마무리하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병도 바로 이런 것이다. 용두사미처럼 무슨 일이든 끝까지 밀고 나가지 못하고 중간에 그만두는 것. 그런데 실행력이 아킬레스건인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든 끝까지 마무리할 수 있는 비결을 알려준다고 하면 관심을 보이지 않겠는가? 그래서 그것을 주제로 책을 쓰기로 하고 제목도 ‘끝내는 힘’으로 정했다. 아쉽게도 책 쓰기 강의가 진행되는 기간에 유사한 도서가 유명 출판사에서 출간되는 바람에 그 주제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러한 것도 훌륭한 글감이 될 수 있다.
그러한 사례는 내게도 있다. 과거 나는 조바심 대마왕이었다. 무슨 일을 하든 조바심을 느끼며 살았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손해를 본 일도 무척 많았다. 성급하게 낯선 출판사와 계약을 했다가 출판사의 입장이 오락가락하는 바람에 계약을 파기하고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출판사부터 알아봐야 하는 일이 있었다. 책을 내는 것만이 아니라 직장생활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조바심으로 인해 내 인생은 피곤해졌고 삶에 대한 만족감도 아주 낮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조바심이라는 것이 결코 인생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지 않고, 그것으로 인해 삶의 질이 떨어진다는 것을 깨닫고 조바심을 벗어던지기 위한 나만의 인지행동치료를 시도했다. 그렇게 몇 년을 꾸준히 노력하자 점차 조바심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만성적인 수준이었던 조바심이 어느 순간 눈 녹듯이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예전에는 책을 쓰기 시작하면 서둘러 출판사에 투고하고 싶어 안달이 났지만 지금은 오히려 너무 여유를 부리는 바람에 책을 내는 것이 늦어지고 있을 정도다. 이렇게 내가 조바심을 이겨낸 경험을 바탕으로 쓴 책이 『당신의 뇌는 서두르는 법이 없다』이다. 늘 내 자신을 괴롭히던 약점이 책의 주제가 된 것이다.
다음 도표는 나의 강점과 약점을 정리해 본 것이다. 애석하게도 강점보다 약점이 더 많다.
약점의 경우 그것을 극복한 사례가 있다면 별도로 체크를 해보자. 대인관계는 나의 약점 중 하나인데 여전히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 중 하나이다. 아마도 사회성을 담당하는 나의 뇌 영역이 적절하게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 같다. 이런 것도 글감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도박으로 인생을 망쳤다가 정신을 차린 사람들이 사람들에게 도박의 위해성을 강조하기 위해 자신의 실패한 삶을 얘기하는 것처럼, 나는 인간관계를 이렇게 해서 삶이 순탄치 않았다는 식으로 글을 쓸 수 있다. ‘인간관계, 이렇게 하면 불행해진다’는 식으로 말이다. 독자들은 저자의 말을 반어적으로 해석하며 읽으면 된다. 하지만 부정적인 글보다는 긍정적인 글이 더욱 감동을 주고 설득력을 높여줄 수 있다. 역설적인 글도 가능하겠지만 그보다는 그것을 극복해낸 과정이 더 호응을 얻을 수 있다. 성과물이 있으니 말이다.
자 그러면 이것을 이용하여 또 쓸 수 있는 주제를 찾아볼 수 있다. 내가 무언가를 배우고 익혀서 기존의 것과 결합하여 새로운 의미를 찾아내는 응용력이 강하다면 그것을 주제로 삼을 수도 있다. 사회생활을 성공적으로 하려면 사람들 사이에 일어나는 일에 대한 맥락을 파악하는 일이 중요한데 눈치가 빨라서 그런 측면에 강점이 있다면 그것으로도 글을 쓸 수 있다.
이 부분은 앞서 언급한 자신이 잘하는 것, 자신이 가진 스킬이나 노하우와 중복될 수도 있다. 걱정할 필요 없다. 다양한 측면에서 주제를 뽑아내려는 시도일 뿐이니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면 된다. 자, 다음 빈칸에 자신의 강점과 약점, 특히 극복해 낸 약점에 대해 적어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