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와 제목 정하기(1)
책을 쓰고자 하는 주제와 콘셉트가 확정되면 다음으로 해야 할 일은 목차를 정하는 것이다. 목차는 어떤 내용을 담을 것인지 책의 골격을 잡는 것으로, 전체적인 구조와 흐름을 나타낸다. 집을 짓기 위한 설계도에 비유할 수 있다. 전체적인 외형은 어떤 모습을 갖출 것이며, 기초는 무엇으로 하고 기둥은 어떻게 세우고, 서까래는 어떻게 올리며 지붕과 외벽은 어떤 식으로 하겠다는 것이 목차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설계도가 완공된 건물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게 만들어주듯 목차도 책의 완성된 형태를 보여준다.
목차는 책을 편집하는 과정에서 초고와는 상당 부분 달라질 수 있다. 출판사의 의도에 따라 구성의 순서가 바뀔 수도 있고 편집 과정에서 추가되거나 삭제되는 내용이 있을 수도 있다. 원고의 질에 따라서는 20% 정도는 완전히 새롭게 써야 하는 경우도 있다. 당연히 저자가 정한 목차도 달라질 수 있다. 대목차 아래 소목 차들도 상당 부분 바뀐다고 생각해도 된다. 물론 아닐 수도 있다. 『주식회사 고구려』는 내가 넘겨준 원고 그대로, 거의 바뀌지 않고 출판되었지만 이런 일은 거의 없다.
편집 과정에서 목차가 바뀐다고 해서 어차피 바뀔 내용이니 대충 하자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목차가 허술하면 담아야 할 내용들도 허술해질 수밖에 없고 논리적 흐름도 일관되지 않기 때문이다. 마치 설계도를 보면서, ‘어? 창문 어디 갔어? 기둥은 또 어딨어?’하고 궁금해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비록 편집 과정에서 목차가 달라지는 한이 있어도 저자 나름대로는 탄탄한 논리를 가지고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구조가 출판사에 투고된 원고의 첫인상을 좌우하기도 한다. 출판사에서는 목차를 보면서 전체적인 원고의 구조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목차를 만들 때 유용한 방법 중 하나가 시중에 나와있는 도서를 이용하는 것이다. 책을 보면서 하나의 주제를 저자는 어떠한 흐름으로 전달하고 있는지, 그러한 흐름은 자연스럽게 느껴지는지, 독자 입장에서 저자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몰입될 수 있는지 등을 살펴보아야 한다. 목차를 정하기 전에 기존에 출간된 책들을 보면서 목차를 만드는 연습을 해보라는 얘기다.
이렇게 해보자. 자신이 쓰려고 하는 분야의 기존 도서들을 찾아보라. 목차를 보기 전에 제목과 부제, 카피만 보고 어떤 내용들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을까 생각해본다. 여기서 카피는 책의 표지에 있는 홍보문구들을 말한다. 책의 제목, 부제, 그리고 카피만 보면 그 책의 콘셉트가 무엇인지 알 수 있으므로 이것만 보고 책의 목차를 추론해본다. 이왕이면 종이에 적어보는 것이 좋겠다. 이제 책을 열어 저자가 만든 목차와 자신이 생각한 목차를 비교해본다.
아마도 많이 다를 것이다. 책에는 있는데 자신은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을 것이고, 반대로 자신은 생각했는데 책에서는 빠뜨린 것도 있을 것이다. 그런 것들을 보며 자신이 놓친 것이 무엇인지 살펴본다. 더불어 책의 내용은 어떻게 흘러가는지 순서도 함께 살펴본다. 이런 작업이 꽤 번거로울 수 있다. ‘그냥 쓰고 싶은 대로 쓰면 되지 뭘 분석까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연습하고 노력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는 결과물에서 차이가 나게 마련이다.
목차는 책의 형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데, 책의 형식은 다음과 같이 몇 가지로 나눌 수 있다.
(1) 나열식 - 서로 연관 없는 이야기들을 독립적으로 서술하는 것
(2) 연대식/순차식 - 시간의 경과 혹은 사건의 흐름에 따라 이야기를 서술하는 것
(3) 논리식 – 서론-본론-결론, 기-승-전-결 식으로 서로 간의 연계관계를 가지고 논리적으로 이야기를 서술하는 것
나열식 책의 목차 만들기
나열식의 대표적인 장르는 수필이나 교양서 등이다. 저자 입장에서는 어떤 글을 먼저 써도 상관없고, 독자 입장에서도 어떤 글을 먼저 읽어도 상관없다. 내가 쓴 『처음 만나는 뇌과학 이야기』나 『워킹 브레인』, 『주식회사 고구려』 등이 나열식 책이다. 『처음 만나는 뇌과학 이야기』는 일상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일들을 뇌의 작용과 연계하여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 뇌과학 입문 교양서이다. 『워킹 브레인』은 기업경영에 필요한 리더십과 소통, 조직문화를 뇌과학의 관점에서 다룬 책이다. 『주식회사 고구려』는 이미 앞서 설명한 바 있다. 이러한 책은 굳이 논리적 흐름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자유롭게 펼쳐내면 된다. 가장 부담이 없는 형식이라 초보자들이 선호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나열식 책의 목차를 만드는 건 비교적 쉽다. 제일 먼저 쓰고 싶은 글의 꼭지들을 리스트로 만든다. 이것을 절(節)이라고 한다. 그 리스트를 비슷한 성격끼리 그룹핑하면 장(章)이 된다. 장을 다시 유사한 성격으로 크게 분류하여 묶으면 부(部)가 된다. 뒤집어서 보면, 가장 큰 분류가 ‘부’이고 부 아래 몇 개의 ‘장’, 다시 그 아래 몇 개의 ‘절’로 이루어져 있다. 요즘에는 절을 다시 나누어 중제 목과 소제목을 붙이기도 한다. 책에 따라서는 부가 없는 것도 있다.
글 꼭지를 그룹핑을 할 때 포스트잇을 사용 하면 편리하다. 포스트잇에 꼭지 제목을 적고 그것들을 이리저리 옮겨 붙여가면서 최적의 조합을 찾아낸다. 그리고 그 그룹핑의 성격을 나타내는 상위 제목을 장의 제목으로 정하면 된다. 혹은 반대로 먼저 몇 개의 장을 만들어 제목을 정한 후 그 제목 아래 어울릴 만한 내용들을 끼워 넣으면 된다. 가장 쉬운 방법은 글 꼭지를 먼저 리스트 한 후 역으로 묶어 나가는 것이다.
다소 길기는 하지만 사례를 보자. 아래는 『처음 만나는 뇌과학 이야기』의 초고 목차였다. 먼저 내가 쓰고 싶었던 글의 목록을 33개 뽑아냈다. 이것을 유사한 성격끼리 그룹핑하여 더불어 사는 삶, 행복한 가정, 만족스러운 삶, 건강한 삶 등 4개의 카테고리로 나누었다. 1, 2, 3, 4부로 이름이 붙어 있지만 실제로는 장의 성격이라고 할 수 있다. 각각의 카테고리에는 그 하위에 있는 꼭지 글들의 성격을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이름을 붙였다.
1부. 더불어 사는 삶
사촌이 땅을 사거든 웃어라
자신의 기억을 과신하지 말라
정신없이 사는 것보다 ‘멍 때리는’ 것이 낫다
스트레스를 적극적으로 해소하라
거울 뉴런의 힘을 이용하면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
독서는 두뇌를 고르게 활용하는 가장 좋은 방법
허영심은 인간의 기본적인 심리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 뿐이다
2부. 행복한 가정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사소한 변화에 연연하지 말라
아이들의 두뇌는 어른과 다르다
야단치거나 화를 내는 것은 두뇌를 망가뜨리는 일
밤샘 공부는 정신발달을 저해한다
사춘기에는 수면리듬이 달라진다
운동을 하면 학습효과가 증가된다
요리하는 가정이 행복도가 높다
3부. 만족스러운 삶
행복은 복권으로 살 수 없다
부정적인 생각은 가급적 빨리 잊어라
웃으면 복이 와요
텔레비전은 바보상자가 맞다
공포영화는 심리적 안정을 해친다
뇌는 가소성이 있어 원하는 대로 개발이 가능하다
장이 편안해야 삶이 편안해진다
자기 의지를 가지고 적극적인 삶을 살아라
4부. 건강한 삶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매운 음식에 의존하지 말라
스트레스를 받을 때 과식을 주의하라
건강하게 살고 싶다면 가급적 술을 멀리하라
술과 담배는 마약처럼 끊기 어렵다
불필요한 자극이 가위눌림을 불러온다
세로토닌으로 삶을 활력 있게 가꾸어라
살을 빼려면 균형 잡힌 식단과 운동이 필수
치매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정신활동을 하라
씹기 활동은 건강을 유지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
위에서 정한 목차들은 출판사와의 최종적인 편집 과정을 거쳐 나도 모르는 나, 뇌는 알고 있다, 타인을 이해한다는 거대한 착각, 뇌는 타고난 것일까, 계발하는 것일까?, 뇌는 몸으로 말한다 등 4개의 카테고리로 다시 만들어졌다. 내가 ‘부’라고 이름 붙인 것을 출판사에서 ‘장’으로 바로잡은 걸 볼 수 있다. 사람들과의 관계, 가정생활, 행복한 삶, 건강한 삶이라는 카테고리가 나와 타인, 뇌의 개발과 건강 등 4개의 카테고리로 바뀐 것이다. 하지만 그 내용들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두 가지를 비교해보면서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싶다. 작가의 시점과 출판사의 시점이 어떻게 다른지 차이점을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1장. 나도 모르는 나, 뇌는 알고 있다
내 기억이 네 기억이라는 생각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이유는 무엇일까?
나이 들수록 보수적으로 바뀌는 이유는?
노스페이스가 학생들의 교복이 되었던 이유
사람들은 왜 복권을 사는 걸까?
왜 나쁜 생각은 하면 할수록 눈덩이처럼 커지는 걸까?
내가 뇌의 주인인가? 뇌가 나의 주인인가?
2장. 타인을 이해한다는, 거대한 착각
영화에서 진한 키스신을 보면 흥분되는 이유는?
남자들은 왜 여자의 마음을 모르는 걸까?
‘중2’는 왜 가장 무서운 존재가 되었을까?
사람들은 왜 공포 영화를 보는 걸까?
야단을 맞으면 머릿속이 하얗게 되는 이유는?
‘옥에 티’는 왜 생기는 걸까?
3장. 뇌는 타고나는 것일까? 계발하는 것일까?
발가락을 자극하면 왜 성적 흥분을 느끼는 것일까?
책을 많이 읽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춘기 아이들이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이유는?
운동을 하면 공부도 잘한다고?
텔레비전은 정말 바보상자일까?
멍 때릴 때 진짜 창의력이 나온다
요리 활동이 주는 커다란 혜택들
4장. 뇌는 몸으로 말한다
해소 방법만 알아도 스트레스가 줄어든다
긴장을 하면 배가 아픈 이유는?
과일과 채소만 먹는다고 살이 빠지진 않는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왜 매운 음식이 당길까?
왜 가위에 눌리는 것일까?
고스톱을 치면 정말 치매를 예방할 수 있을까?
껌을 씹는 것은 정말 버릇없는 짓일까?
『주식회사 고구려』는 내가 만든 목차가 전혀 달라지지 않고 그대로 출판되었는데 어떻게 만들어져 있는지 간단하게 살펴보자.
제1부 강한 나라, 고구려
다물多勿이라는 건국이념을 통한 비전 경영
뚜렷한 목적의식을 심어 준 다물 정신 | 다물 정신의 상실과 함께 찾아온 고구려의 몰락 | 가슴 뛰게 하는 비전을 수립하라
상무 정신이 만들어 낸 독특한 조직 문화, 고구려 웨이
다물 정신을 실천하기 위한 고구려인들의 사고와 행동 | 고구려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상무 정신 | 비전을 실현할 수 있는 조직 문화를 구축하라
자부심과 선민의식이 만들어 낸 스토리텔링의 승리
세계의 중심이라는 천하관을 가진 고구려인들 | 스토리텔링으로 공감대를 형성하고 유대감을 높여라
(중략)
제2부 장수한 나라, 고구려
국제 정세의 변화에 서로 다르게 대처한 두 왕의 운명
국제 정세의 변화를 비전의 완성 기회로 인식한 광개토대왕 | 변화에 대한 안이한 대처로 몰락의 단초를 제공한 영류왕 | 빅 피처 리더십의 필요성 | 미래의 성장 동력을 자원으로부터 찾아라
이민족과 다문화를 바탕으로 한 다양성 경영
이민족에 대한 개방과 포용으로 이루어 낸 다양성 | 다양한 문화의 수용을 통한 지속 성장 | 개방형 협업을 통한 성장 기회의 창출
고구려가 성城의 나라가 된 까닭은?
성을 쌓아 전쟁의 위험에 대비한 고구려 | 리스크는 기회의 또 다른 이름 | 위기 상황을 예상하고 컨틴전시 플랜을 수립하라
(하략)
이 책에서는 부-장-절의 전형적인 형식을 취했다. 눈치가 빠른 독자는 『주식회사 고구려』에는 ‘부’가 있는데 『처음 만나는 뇌과학 이야기』에는 ‘부’가 없음을 알았을 것이다. 왜 두 책이 다를까? 조금 더 세밀하게 보면 『주식회사 고구려』는 ‘강한 나라’와 ‘장수한 나라’라는 서로 다른 성격의 두 가지 이야기를 묶어 놓았다. 강한 나라가 되는 것과 장수하는 것은 별개이니 서로 구분하기 위한 목적으로 부를 사용하였다. 반면 『처음 만나는 뇌과학 이야기』는 이야기의 성격들이 크게 다르지 않다. 굳이 부를 사용하지 않아도 상관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