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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뚜루 Feb 21. 2022

생각을 생각하는 밤

퇴근길

의식의 흐름이 널뛰고 있다. 예컨대 이런 생각들이 밀려드는 퇴근길.


1.

성수동 출장을 왔다. 헤이그라운드의 뻔득한 통유리창을 보며 생각한다. 뭐야, 힙하다더니 겉은 맨들맨들 대기업 통유리창이랑 다를 바 없네. 다음엔 속도 구경해봐야지.


2.

어제 동네공원을 산책하다 세 친구를 사귀었다. 사사와 맥문동과 수크렁. 벼과식물인 사사는 키 작은 대나무처럼 생겼는데 바람 불면 사락사락 스륵스륵 비벼대는 소리를 낸다. 친구가 곁에 바투 서서 수다 떠는 느낌이다. 마음이 맑아지고 경쾌해진다.


맥문동은 사사보다 더 얇고 땅으로 퍼지는 식물인데 추운 겨울에도 쨍한 녹색을 띠고 있다. 뿌리를 지렛대 삼아 사방으로 드러눕는 모습이 꼭 줄다리기를 하는 것 같다. (맥)문동아, 줄다리기 같이 하자, 라고 말해주고 싶다. 수크렁도 벼과식물인데 추위를 타는지 누렇다. 고목 주변을 치렁치렁 크렁크렁 둘러싸고 있다. 덕분에 나무가 근사해보인다. 오, 수크렁빨 좀 받는데? 라고 얘기해주면 나무가 좋아할까?


나는 맥문동일까? 사사일까? 수크렁일까?


3.

일기에도 거짓말을 쓰는 사람. 제목만 보고 결제한 책을 다 읽었다. 99년생 시인의 자의식 과잉 에세이를 (엿)볼 수 있어 다행이다. 차도하라는 시인을 알게 되어 기쁘다. 도하 시인이 그랬다. 하고 싶은 걸 하겠다고.


나는 어떻게든 명명되고 싶은 마음에 스스로를 쪼개면서 살아왔다. 착한 딸, 평범한 아이, 고학력자, 화목한 가정, 개념녀, 나의 이름 자체. 그러니 이제 나는 하고 싶은 걸 하려고 한다. - 차도하 <일기에도 거짓말을 쓰는 사람>


곰곰이 생각한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걸 얼마나 하고 있을까?


여기까지.

지하철에서 내려 계속 엄지로 여기까지 글을 적어 내려가는데 점점 손가락이 얼얼해진다. 일단 후퇴. 손들, 주머니로 집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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