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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뚜루 Apr 28. 2022

나를 '뽀개는' 시간

육아통에 강도를 매겨보았다

남편과 딸에게 코로나가 닥친 순간, 직감했다. 아, 나는 이제 D졌구나. 당분간 '나'는 없겠구나. 회사에 연차를 내고 24시간 아이 셋의 손과 발이 되었다. 예컨대 이런 식이었다. 설거지를 하는데 4살 쌍둥이 아들 놀다 밥상을 엎어버린다거나, 빨래를 개는데 애들이 빨랫감을 발로 차버리는 놀이(?)를 한다거나 하는, 대노할 상황들의 연속적인 전개. 아이들을 24평, 아니지. 남편과 딸이 각각 격리된 두 방을 제외하면 10평 남짓한 공간에서 뛰고 어지르고 수시로 엉키는 아이들을 돌보며 문득 '해산'의 고통을 감각했다. (비록 나는 제왕절개로 낳았지만) 임산부들에게 주어지는 공통된 질문이 있었으니.


"얼마나 아파요?"

"통증을 1에서 10까지 매긴다면, 몇이에요?"


지금 이 육아의 고통을 수치화한다면 나의 육아통은  몇일까? 5?아냐, 어림도 없어. 이건 적어도 7 이상이지, 따위의 생각을 하며 한때 지인들에게 호기롭게 떠들던 '나만의 육아 비법'을 떠올렸다. "일하면서 애 셋 키우는 거 힘들지 않아요?" 라는 질문을 받으면 으레 하던 얘기를.


"별로 안 힘들어요. 발로 키우거든요. 오줌 싼 기저귀는 오른발로 쓰레기통에 팅하고, 새 기저귀는 왼발 발가락으로 집고.  진짜 '발로 하는 육아'를 하고 있어요." (뚜루 왈)


그런데 극단적인 코로나 상황에 몰리자, 내가 멋진 척 떠들었던 그 '발로 하는 육아'가 혹시 X발, X발 거리면서 하는, X 육아가 아니었을까 하는 합리적인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왜 김혼비 작가의 책 <아무튼 술>에도 나오잖아. 씨발이라는 욕을 찰지고 멋지게 구사하려면 씨발스러운 상황에 놓이면 된다고.


나는 차마 아이들 앞에서 그 단어를 꺼내지는 못하고 속으로 내 육아통의 강도에 점수를 매기고만 있을 뿐이었다. 오오 점점 올라온다, 올라와. 7.. 8.. 어어? 너네 한 번만 더 그러면 진짜 10이다, 그땐 진짜 폭발이야! 내가 폭발해도 너넨 할 말 없어. 그리고 드디어 마그마를 분출해도 더는 이상하지 않을, 매우 합리적인 상황이 찾아와 영혼까지 끌어내 화를 뿜어내려는 그때! 토마토 스파게티 접시에 코를 박고 미동 없던 아이가 고개를 들었으니.


!!!


나는 기어코 터지고야 말았다. 화가 아니라 함박웃음이. 토마토 소스를 양볼에 잔뜩 묻혀 볼빨간 사춘기(?)가 된 4살. 뭉떵한 코는 빨개져 루돌프 사슴코가 되었다. 파하하. 그 폭의 장면에 육아통이 스르륵 물크러졌다. 


드라마 작법상 중요한 딜레마의 법칙. 주인공이 극단적인 딜레마에 놓였을 때 비로소 그 사람의 본성이 드러난다는, 인간의 속성에 대하여 생각했다. 안락한 일상에서는 내가 이타심 깊은 인간이라는 착각에 빠져 살지만, 치닫는 상황에서는 나 자신이 우선인, 자기중심적이고 분노조절이 어려운 인간(때로는 괴물 같기도)이라는 사실을 직시할 수밖에 없었다. 겨우 이것뿐인 인간이라면, 나는 어떤 엄마가 되어야 할까?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 코로나를 계기로 나는 깊은 고민에 빠져들었다. 내가 나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나를 철저히 뽀개야 할 것만 같았다. (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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