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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뚜루 Nov 19. 2021

혐오도 취향이 되나요?

노 키즈

덜컥, 생선가시가 목에 걸렸다. 목구멍이 뻐근하다. 혓바닥을 움직여 가시 걸린 지점을 탐지해보지만 실패. 물을 벌컥벌컥 들이켜본다. 어림 없이 그대로다. 기어코 손가락을 대동한다. 입을 쩍 벌려 이곳저곳을 후벼본다. 손끝에 걸리는 것이 없다. 아마도 생선가시는 내가 존재를 알아차리는 순간 이미 식도를 뚫고 빠져나간 모양이었다. 하지만 얼얼한 느낌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내 몸과 마음에 끈적하게 달라붙은 것 같았다. 그 흉흉하고 찝찝한 마음은 밥을 먹는 동안 계속되었다.


생선가시가 목에 걸린 듯한 기분. 빼내고 싶지만 콕 박힌 느낌. 5년째 내 마음에 콕 박힌 채 불쑥불쑥 심연을 치닫고 올라오는 단어가 있다. 노키즈존. 아이를, 사람을 떳떳하게 차별하는 단어가 누군가의 취향으로 굳어갈 즈음, 정확히는 2017년 8월 처음으로 노키즈존 기사를 썼다. 당시 노키즈존을 웹툰으로 풀어낸 기사는 처음이어서 퍼나르는 손들이 많았다. 그런데 이게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 짤로 돌아다니는 모습을 목도했다. 애초에 상생과 공존을 도모했던 웹툰은 악의적으로 편집되어 노키즈존을 합리화하는 내용으로 변질되어 있었다.


당시 내가 썼던 웹툰 기사. 엄마들의 돌봄 노동에 관한 서사는 통째로 편집된 채 일방적인 내용만 취사선택되어 전파됐다.

노키즈존은 나에게 목에 걸려 있는 생선가시 같은 존재다. 언젠가는 꼭 빼내고 싶은, 반드시 빼내야만 하는 그런 존재. 그 이유를 단 하나의 문장으로 압축한다면.


혐오도 취향이 되나요?


타인을 뭉갬으로 인해 비로소 홀로설 수 있는 단어들을 발견할 때면 마음이 으끄러진다. 예컨대, 이런 문장들.


#발암유발하는 친구

 수식어는 하나도 재미있지 않다. 암 경험자와 그의 가족들도 당신의 글을 보고 있다는 걸 기억하자.


#나 결정장애야

결정의 사전적 의미는 '행동이나 태도를 분명하게 정함'이다. 애초에 결정엔 장애라는 단어가 결부될 수가 없는 것이다. 부디 장애를 희화화하지 않았으면.


#고장난 심장

선천성 심장병으로 두 차례나 개흉수술한 딸을 둔 나같은 사람은 이런 문장을 보면 마음이 덜커덩 내려앉는다. 연애 대상에 대한 두근거림을 의미하는 고장난 심장이 나에겐 심정지 또는 수술을 요하는 상태로 각인될 뿐이다.



모든 어른들이 어린이를 하대하던 1920년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새끼 아님 애새끼라 불리던 혐오의 대상에게 어린이라는 근사한 이름을 붙여준 방정환 선생은  어른들에게 이렇게 당부했다고 한다.


1. 어린이를 내려다보지 마시고 쳐다보아 주시오.

1. 어린이를 늘 가까이 하사 자주 이야기를 하여 주시오.

1. 어린이에게 경어를 쓰시되 늘 보드랍게 하여 주시오.

1. 이발이나 목욕, 의복 같은 것을 때맞춰 하도록 하여 주시오.

1. 잠자는 것과 운동하는 것을 충분히 하게 하여 주시오.

1. 산보와 원족 가튼 것을 가끔 가끔 시켜주시오.

1. 어린이를 책망하실 때에는 쉽게 성만 내지 마시고 자세히 타일러 주시오.

1. 어린이들이 서로 모여 즐겁게 놀만한 놀이터나 기관 같은 것을 지어 주시오.

1. 대우주의 뇌신경의 말초는 늙은이에게 있지 아니하고 젊은이에게도 있지 아니하고 오직 어린이 그들에게만 있는 것을 늘 생각하여 주시오.

ㅡ 1923년 어린이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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