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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뚜루 May 12. 2022

난데없이 코딱지

새벽 4시 58분. 덜컥 눈이 떠졌다. 그동안 숙제처럼 미뤄왔던 다림질을 하려고 서재방에 들어가 문을 딸깍 닫았다. 그런데 혼신의 다림질 중, 안방에서부터 환청처럼 들려오는 소리.


ㅇㅓㅁ ..ㅁㅏ...


뭉그러진 발음이긴 하나, 자음과 모음의 조합으로 볼 때 나를 지칭하는 것이 분명했다. 지금? 이제 막 다리기 시작했는데? 하는 수 없이 다리미를 내려놓고 엉덩이를 들썩여보는데, 크레센도처럼 선명해진 목소리가 적막을 찢었다.


엄. 마 .!!!


이건 뭐 스타카토 수준인데? 응급상황이 분명해! 아들아, 에미가 간다, 가!


4살 쌍둥이 막내는 통상 새벽에 두 차례 깬다. 지금 오줌을 누었으니, 에미가 잠을 자건 말건 당장 내 기저귀를 갈으시오, 하는 파워당당한 음성으로 이렇게 말하곤 하는데.


"엄마, 기저귀에 쉬 했어."


그러면 나는 보이지도 않는 어둠 속에서 기저귀를  더듬거리며 아이의 용변을 처리해주곤 했던 것이다.


그래서였다. 문을 빼꼼 열고 기저귀 먼저 찾은 것은. "OO아, 기저귀 갈아줄까?" 그러자 아이는 차분해진 음성으로 다감하게 답했다.


코딱지.


응??? ..? 아이는 내가 엉거주춤 내민 손에 한껏 우아하게  코딱지를 털어내더니 자신의 애착 토끼를 끌어안고 태연하게 잠을 청하는 것이었다. 코딱지 한 톨 살포시 받아들고 어둠 속에 우두커니 서 있자니 나도 모르게 실소가 터지고 말았다. 그리고 순간 육아의 정의에 대하여 생각해보게 되는데.


아, 모름지기 육아란, 타인의 코딱지를 서슴없이 받아내는 일이구나.


제 몸에서 나온 코딱지도 더러운데 타인의 코딱지가 이토록 귀엽게 느껴지는 마음이라니, 나 엄마 맞구나. 더 나아가 전국의, 아니 전 세계의 코딱지연대 회원들이 왈칵 떠올라 뭉클한 동지애를 느끼고 말았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육아의 사전적 정의는 '어린아이를 기름'. 그런데 나는 기왕이면 '아이를 키우는 일'보다는 '사람을 키우는 일'이라고 명명하고 싶다. 그것도 나와 아이, 두 사람을 키우는 일이라고. 아니 두 개의 우주를 유영하는 일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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