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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뚜루 Sep 28. 2021

아이에게 절대 '욱' 하면 안 되는 이유

난 나쁜 엄마였다

"나 그때 다 기억 나."


어둑해진 밤, 불을 끄고 아이들과 자려고 누웠는데 8살 딸(필명 유니아카) 불쑥 3년 전 이야기를 꺼냈다. 5살 때 심장복합기형 TOF(팔로사징증후군)로 재수술을 받았던 아이. 6시간에 걸친 대수술을 받고 곧장 소아중환자실로 옮겨졌던 순간을 딸아이는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엄마, 나 그때 주사 엄청 꽂았다?
내가 엄마 보고 싶다고 우니까
간호사 선생님이 나 계속 달래줬어.
뽀로로 영상 봤던 것도 다 기억 나.


소아중환자실은 오전과 오후, 하루에 두 차례만 면회가 가능했다. 내가 중환자실 앞 보호자 대기실에서 면회 시간을 기다리는 사이, 아이는 5살의 마음과 심장으로 스스로를 얼러 가며 엄마 아빠를 기다리고 있었다. 솔직히 놀랐다. 불과 3년 전이라고는 하지만 마치 사진으로 찍은 듯 선명하게 그 장면을 기억하고 있을 줄은. 그저 스쳐 가는 기억으로 남겠거니, 했다. 큰 수술을 받은 사람들은 외상 후 스트레스가 남는다는데 혹시나 그런 걸까 마음을 졸이며 생각을 모으고 있는데. 딸아이가 다음 말을 차분히 이어나갔다.


엄마, 나 그리고 그것도 기억 나.
엄마가 내 마스크 잡아당긴 거.


"......어?! (당황)"


코로나가 대규모로 퍼지기 직전, 그러니까 대중교통 이용시 마스크 착용 의무화가 시행되기 전이었다. 어딜 가던 중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여튼 아이와 함께 지하철 플랫폼에서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유니아카가 마스크가 불편하다며 계속 떼를 썼다. 자기 마스크 끈을 잡아 뗄 듯 악을 쓰고 발을 구르고 큰 소리로 짜증을 냈다. 안 된다고, 그래도 쓰고 있어야 한다고 아이를 어르고 달래봤지만 아이의 반응은 점점 격해질 뿐이었다. 나도 점점 화가 쌓여 결국엔 폭발해버리고 말았으니.


"아, 됐어! 쓰지 마!"


그러면서 아이의 마스크를 벗기는 시늉을 한다는 것이 그만 마스크 한쪽 끈을 잡아당기고 말았다. 한쪽 끈만 귀에 걸린 채 대롱대롱 애처롭게 매달린 마스크. 아이는 충격을 받은 듯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러더니 곧장 제 손으로 마스크를 바로 썼다. 나에겐 이 일이 그저 해프닝이었는데 아이에겐 충격적인 사건으로 오래 기억에 남았었나 보다. 나는 온몸으로 부끄러움을 느끼면서 아이에게 정중히 사과했다.


"유니아카야 미안해. 엄마가 아무리 화가 나도 그러면 안 되는 거였는데, 그때 마음 다치게 해서 정말 미안해. 다시는 안 그럴게."


지금은 기억나지도 않는 목적지가 뭐 그리 중하다고, 아이가 몸을 비비꼬며 생떼쓰는 게 뭐 그리 불편한 일이라고 나는 왜 그토록 어른답지 못한 방식으로 화를 냈을까. 나에겐 순간의 감정이었겠지만, 아이의 기억은 선명하고 오래간다. 그래서 두렵다. 그 작고 또랑또랑한 눈동자가 포근한 엄마보다 고함치는 엄마로 날 기억할까 봐. 평생 좋은 것만 눈에 담아도 모자랄 내 새끼의 마음이 나로 인해 오염되었을까 봐.



유타 바우어의 동화 <고함쟁이 엄마>가 떠올랐다. (배재현의 '내 아이의 트라우마'에 수록된 글을 발췌함)


오늘 아침 엄마가 나에게 소리를 질렀어요.
깜짝 놀란 나는 이리저리 흩어져 날아갔지요.
내 머리는 우주까지 날아갔고요.
두 날개는 밀림에서 길을 잃었고요.
부리는 산꼭대기에 내려앉았어요.
꼬리는 거리 한가운데로 사라져버렸지요.
두 발은 그자리에 남아 있었지만
곧 달리기 시작했어요.
나는 내 몸을 찾아보고 싶었어요.
하지만 두 눈이 우주로 날아가 버려 아무것도 볼 수 없었어요.
......
바로 그때였어요.
엄마가 내 모든 걸 다시 모아 한데 꿰매고 있었어요.
......
다 꿰매고 나서 엄마는 말했어요.

"아가야, 미안해."


이 시를 붙들고 마음으로 울었다. 두 번 다신 너의 몸을 산산조각 내 흩뿌리는 행동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너에게 상냥하고 다정한 언어를 건네겠다고. 미안하다는 말보다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들려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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