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뚜루 Aug 16. 2022

드디어 빚을 갚았다

빚을 갚았다.

본디 빚이란, 갚고 난 다음에 홀가분해져야 하는데 마음이 찌르르 울걱거리는 걸 보면 앞으로 평생 빚을 갚아야 할 팔자인가 보다.


지난 금요일.

좁고 은 에스컬레이터가 내 앞에서 흘러 내려가고 있었다. 앞사람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발판에 발을 올리려는 그때, 앞사람이 돌연 내 앞에서 고꾸라지는 것이었다.


앞사람은 아주 작은 사람들이었다. 언뜻 봐도 고작 예닐곱살 되어 보이는 그들 중 한 명은 무릎을 구부린 채 에스컬레이터에 손가락이 끼기 직전이었고, 나머지 한 명은 짐짓 놀랐는지 뒷걸음질을 쳐서 발판 위로 올라선 상태였다.


"아, 애기!!"


내 입에서 다급한 탄식이 흘러 나왔고, 나도 모르게 앞선 아이를 일으켜 세우고 그 작은 손을 잡아 평평한 곳으로 이끌고 있었다. 아이1을 안전한 곳에 데려다준 뒤 에스컬레이터를 한 계단씩 거슬러 올라가 아이2의 손을 맞잡았다. 나와 아이2 둘이서, 6칸 혹은 7칸쯤 되는 그 짧은 에스컬레이터를 천천히 내려오는 사이 아이들의 엄마가 뒤를 돌아보며 소스라치고 있었다. 엄마의 손엔 아이3의 손이 붙들려 있었고..!!


아이1과 아이2, 아이3이 모두 똑같은 옷을 맞춰입은 것으로 짐작컨대 아이들은 세 쌍둥이이거나,  약간의 터울이 있는 자매 같았다.


엄마의 얼굴은 황망하게 일그러지면서도, 나를 향해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었다. 악, 어떡해! 아, 고맙습니다! 이런 뉘앙스의 언어를 커다래진 눈동자를 통해 보내오고 있었다.


에스컬레이터 끝자락에 또각 또각 걸려 있던 캐릭터(고양이였던가 강아지였던가) 반지를 용케 발견해 주인(아이1)에게 돌려주고, 아직 잔열이 가시지 않은 엄마에게 가벼운 목례를 한 다음 그 자리를 조용히 빠져나왔다.


그런데 잔열이 남아 있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실은 에스컬레이터에 빨려 들어갈 뻔한 아이를 보는 순간 속으로 눈물이 터져 나왔다.


"아, 내 새끼!!"


곧장 이런 마음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 마음은, 차에 치일 뻔했던 내 아이의 손을 붙들어준 '모르는 얼굴1'과 길을 잃고 헤매던 내 아이를 붙들고 앉아 엄마인 나에게 전화를 걸어준 '모르는 얼굴2'로부터 전염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나는 에스컬레이터 사건이 있기 전부터 꽤 오랫동안 '빚진 자'였다.


빚은 갚았지만 빚은 언제라도 또 질 수 있기에, 앞으로 갚아야 할 빚이 계속 잔존하는 것으로 여기기로 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아이를 지켜주고 있다. 서로의 울타리가 되어주고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