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 왜 썼어? 작가의 변을 들어봅시다!

작가노트

by 김뚜루

"작가의 변을 들어봅시다."


드라마 대본 합평을 받는 날, 교육원 선생님의 첫마디는 늘 이렇게 시작했다. 합평을 받다 보니 요령이 생겨서 작가의 변(이라기보단 핑계ㅠㅠ에 가까움)을 미리 준비해갈 때도 있었고, 즉석으로 머리를 굴릴 때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깨달았다.


작가의 변은 입이나 뇌 같은 '몸'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마음'에서 나온다는 걸! 마음은 곧 기획의도를 뜻했다. 나는 이 드라마를 쓰려고 하는가!

나는 이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가!


기획의도가 붕 떠다니면 글도 흔들렸다. 기획의도가 바닥에 바짝 달라 붙어 있으면 글도 견고했다. 지금까지 내가 쓴 6개의 작품들은 시작부터 나풀거리는 글도 있었고, 발단부까진 잘 구축된 글도 있었고 천차만별이었다.



드라마 대본을 쓴다는 건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는 일이다. 작가는 신이 되어 세계관을 차곡차곡 확장해나간다. 오롯이 나만의 힘으로 유일무이한 세계를 창조하는 일은 고통스럽지만 즐겁다. (즐거운데 힘들어... 공모전에서 계속 떨어져...)


가끔 마실 나가듯 다른 작가들의 세계를 기웃거리곤 한다. 특히 소설 끝자락에 나오는 '작가노트'를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중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의 작가노트를 몇 개 소개한다.



박상영 [우럭 한 점 우주의 맛] 작가노트


벤치에 앉아 벌레를 쫓으며 샌드위치를 먹고 있으면, 내 또래의 부모들이 유모차를 끌며 잔디밭을 산책하고 있는 게 보였다. (중략) 한참 동안 그 사소한 발걸음을 바라보다 나도 모르게 내린 결론. 나는 이곳에 속해 있지 않다.


최은영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이런 고통을 겪지 않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라고 때때로 생각하다가도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야'라는 생각을 붙잡고 일어나려고 노력했다. (중략) 그래서 더 진실해지고 싶다.


강화길 [음복]


쓰지 못할 장면들을 계속 쓴다. 날것의 어떤 감정들, 내가 이해하지 못하고, 절대 알 수 없을 어떤 것들. 시시하지만 무서운 것들. 경험들. 목소리들. 그것들을 자유롭게 적고 직시하는 과정이 있어야, 그것들을 모두 무너뜨려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장류진 [연수]


초고를 쓰는 동안 나는 이 소설이 망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게 어디든지 어떻게든 도착만이라도 해보자고 스스로를 설득하면서 마지막 페이지까지 끌고 왔다. 마침표를 찍고나자 그래도 아주 망한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고, 퇴고를 거치고 나서는 이 소설을 마음놓고 좋아할 수 있게 되었다.


김초엽 [인지 공간]


요즘 소설 외에 관심을 갖는 또하나의 분야는 장애학이다. 장애학에서는 몸의 손상이 장애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손상과 상호작용하는 사회적 구조가 장애를 만든다고 말한다. 특정한 형태의 몸에 맞추어 설계된 세계가 어떤 종류의 몸을 장애화하는 것이다.



끝으로 작가노트는 아니지만 내가 글의 원천이라고 생각하는 문장. 정세랑 작가의 소설 <보건교사 안은영>의 띠지에 적힌 문구를 공유한다. "저는 이 이야기를 오로지 쾌감을 위해 썼습니다."


왜 쓰는가, 에 대한 유쾌하고 진솔한 작가의 입담에 또 한번 망생이는 무릎을 턱 꺾는다. 그래! 역시 글은 재미가 짱이야!!!


* 커버사진: 넷플릭스 <보건교사 안은영>